꿈에서라도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그 무엇이 있다면 '저승사자'가 아닐까. '저승'과 '사자(使者)'가 합쳐진 이 말은 그대로 죽음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와 도교에서의 '승(乘)'은 '생사(生死)의 고해(苦海)와 열반(涅槃)의 피안(彼岸), 그 사이' 개념이어서 '이승'은 그 이쪽-삶을 의미하고, '저승'은 그 저쪽-죽음을 의미한다. 저쪽에서 온 심부름꾼이니, 저승사자와의 만남은 이승을 마감하는 절차다. 저승사자를 관할한다는 염라대왕은 지옥의 10가지 왕 가운데 죄인의 혀를 집게로 뽑아내는 '발설(拔舌)지옥'을 관장하고 있다.
■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한국일보 등에서 '관가(官街)의 저승사자'로 명명했으니 그래서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총리실이 밝힌 최소한의 내용만 보더라도 그들이 '죄인의 혀를 집게로 뽑아내는 임무'를 관장하고 있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발설'은 입 속의 혀만이 아닐 터, 요즘 세상에선 PC의 키보드나 인터넷의 퍼 옮기기가 입과 혀를 100% 이상 대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중은행 용역회사 대표가 BBK동영상을 퍼 옮겨놓은 것이 저승으로 가야 할 사안이 돼 버렸다. 홀연히 저승사자가 나타나 옷자락을 잡아 끌고 있다.
■ 저승사자가 얼씬거려야 할 곳이 있고 그래선 안 되는 곳이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쇠고기 광우병 촛불집회를 계기로 신설됐다. 전부터 있었던 암행감찰반을 확대ㆍ개편한 것으로, '공무원 비리 감찰'에서 나아가 '공직자의 촛불 동조 발본색원'에 나선다는 의혹을 받아왔던 터였다. 이번에 의혹의 꼬리가 드러난 것인데 나아가 그 대상이 공직자가 아니라 민간인이라는 점이 더 심각하다. 영장도 없이 압수수색을 하고 은행을 통해 압력을 넣고 세무조사 운운해놓고 "민간인인 줄 몰랐다"고 하니 어이가 없다. 정치자금까지 조사하면서 상대방의 신분도 몰랐다니.
■ 사자(使者)는 심부름꾼이다. 저승사자들이 멋대로 돌아다녔는지, 끼리끼리 패거리를 지어 천방지축 날뛰었는지 조만간 밝혀지겠지만 그렇게 된 것이라면 다행이다. '영포회'나 '영포목우회' 따위를 배경으로 스스로 호가호위했다면 오히려 문제는 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듯하여 소름이 끼친다. 그 동안 공직사회 내부에서 왕래하던 저승사자들이 혹시 일반 국민들의 '이승'에까지 돌아다니면서 염라대왕의 명을 참칭하거나 위조된 마패를 차고 다닌다면 큰 일이다. 꿈에서라도 결코 만나고 싶지 않고, 기억조차 되살리고 싶지 않은 것들이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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