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재발하는 아동 성폭행 사건, 피의자 고문의혹, 일선 경찰서장의 하극상 파동 등 구멍 뚫린 치안과 내부기강 해이로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빠진 경찰 수뇌부가 해법 찾기에 골몰했다. 5일 경찰청 9층 무궁화회의실에서 열린 '전국 경찰지휘부 회의'에서다.
오전 10시 시작한 회의는 당초 예정시각을 1시간 넘겨 오후 4시께 끝났다. 점심도 도시락으로 때우면서 진행한 6시간 마라톤 회의였다. 지휘부 회의가 통상 2시간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사태를 조직의 심각한 위기로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방증이다. 과도한 성과주의로 초유의 하극상 역풍을 겪은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발언에서 "일련의 사건으로 경찰이 비판을 받은 것에 대해 전 경찰에 송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경찰총수인 강희락 경찰청장은 회의 전 "(경찰 쇄신을 위해) 과연 무엇이 정답인지 끝장토론을 벌일 것"이라며 위기돌파 의지로 분위기를 잡았다. 그래서인지 시종 굳은 분위기 속에서도 전방위적인 대책이 쏟아져 나왔다. 각종 대책에도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아동 성폭력에 대해서는 전쟁을 선포했다.
경찰은 우선 '원스톱 기동수사대'를 확대 개편한 '성폭력 전담수사대'를 조만간 발족하기로 했다. 지방청 별로 설치된 원스톱 기동수사대 80여명에 전문 수사인력 70여명을 보강, 16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주관부서도 경찰청 생활안전국에서 수사 부서인 수사국으로 이관한다. 아울러 7월 말까지 성범죄 지도시스템도 구축하기로 했다. 2004년 이후 발생한 10만여 건의 성범죄 사건 발생 시간과 장소를 범죄정보시스템에 입력해 취약 시간대 빈발 지역을 집중 관리할 방침이다. 또 일반인도 성범죄 알림이 사이트(http://www.sexoffender.go.kr)를 통해 법원의 공개 명령을 받은 성범죄자를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서울양천경찰서의 피의자 고문의혹과 관련해서는 여죄 조사로 가혹행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마약, 절도 피의자에 대해 진술영상 녹화를 우선 시행한 뒤 대상을 확대키로 했다. 이를 위해 271개 경찰관서 472곳에 불과한 진술영상 녹화실을 1,412곳으로 3배 이상 늘린다. 폐쇄회로(CCTV)의 각도 조작을 막기 위해 180도회전 카메라로 바꾸고, 녹화 영상과 음성을 3개월간 의무 보관토록 했다.
채수창 강북경찰서장의 하극상 파동 원인이 된 성과주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검거실적 위주에서 예방과 주민 만족도를 평가에 대폭 반영하고 평가 하위자에 대한 감찰보다 우수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환키로 했다. 조 청장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등 문제되는 부분을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 안팎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성폭력 전담수사대는 원스톱 기동수사대가 발족한 지 6개월 만에 인력을 늘리겠다는 것이고 성범죄자 인터넷 공개는 '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하는 것"이라며 "기존 대책들을 짜깁기한 듯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모래알 조직'이라는 비판을 야기한 허위보고나 보고누락, 항명 등 조직 기강해이와 관련해서는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에 대해서는 상부보고를 강화해야 한다"는 식의 원론 수준의 논의만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지휘부가 사태봉합에만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허정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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