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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의 잡지 '빅 이슈' 판매현장 가보니…"작은 책자속에 큰 희망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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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의 잡지 '빅 이슈' 판매현장 가보니…"작은 책자속에 큰 희망 담았습니다"

입력
2010.07.0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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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지하철2호선 홍대역 5번 출구 앞. 젊은이들로 북적거리는 인도 위에 빨간 조끼에 빨간 모자를 쓴 중년 남성 한 사람이 잡지 몇 권을 들고 서성이고 있었다. 잡지 표지에는 '빅 이슈(THE BIG ISSUE)'라는 제호와 유아용 고무 젖꼭지를 물고 있는 노숙인의 사진 위에 '빅 이슈가 태어났다, 나도 다시 태어났다'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다. 이 중년의 남성은 "(표지 인물은) 노숙자인데 자립해서 고물상 주인이 된 사람이래요. 이 사람처럼 꼭 성공해야죠"라고 말했다.

1시간이 지나도록 행인들에게 권유를 하지 못한 이 남성에게 한 여대생이 다가와 "영국에서 보던 잡지가 우리나라에도 있네. 한 부 주세요"라고 말했다. 놀란 이 남성은 잡지를 건네며 "희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라며 연신 허리를 굽혔다.

노숙인이 제작과 판매까지 하는 노숙인 잡지 '빅 이슈 한국판'이 5일 창간돼 시판에 들어갔다. 홍익대 주변에서 잡지 판매를 맡은 노숙인 배윤식(49)씨도 이날 정오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배씨는 이날 하루 판매 목표를 40부로 정하고 오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빅이슈코리아 사무실에 들러 잡지를 받아왔다.

그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길거리 생활을 하던 노숙인이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벌인 사업이 잘못 되면서 집과 회사는 물론이고, 인생 모두를 잃었다. 조금이라도 돈이 생기면 술을 사서 마셨다. 그러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일용직 근로를 찾기도 했으나 어느덧 신용불량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이런 배씨가 다시 삶의 목표를 갖게 된 것은 서울시립 노숙자 요양시설인 '장위사회복지관'에 들어가면서부터. 한 노숙인에게 소개 받은 이 곳에서 배씨는 자활의 희망을 꿈꾸게 됐다. 마침내 지난해 10월 그토록 희망했던 빚 1억2,600만원을 법원으로부터 파산면책 받아 신용불량자 딱지를 뗐다. 배씨 외에도 지난해 서울시의 신용리스타트 사업으로 채무조정이나 파산면책을 받은 노숙인만 396명이나 된다. 금액으로는 230억원이 넘는다.

배씨는 이젠 '빅 이슈'라는 잡지에 미래의 희망을 걸고 있다. '빅 이슈'는 세계적인 영국 화장품회사 바디샵의 창업자 애니타 로딕의 남편 고든 로딕이 친구인 존 버드와 함께 런던에 넘쳐나는 노숙인 자립을 위해 91년 창간한 잡지다. 노숙인들은 길거리에서 이 '빅 이슈'를 팔아 판매대금 일부를 가져간다. 기사와 내용은 유명인이 대가 없이 기고하는 '재능 기부'형태로 채워진다. 영국에서는 매주 발행돼 한 달에 65만권 정도가 팔린다. 영국 노숙인 5,000여명이 이 잡지 판매로 자립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선 비영리 민간단체인 '거리의 천사들'이 빅이슈코리아라는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서울시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빅 이슈'는 한 권에 3,000원인데 이 중 1,600원이 배씨 같은 판매 노숙인들에게 돌아간다. 판매사원은 배정받은 장소에서 빨간 조끼와 모자를 착용해야 하며 ▦미소 띈 얼굴로 당당히 고개를 들며 ▦하루 수익의 50%를 저축해야 한다 등의 판매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36쪽짜리 빅이슈 창간호엔 판매사원으로 탈바꿈한 노숙인 14명 중 9명의 사진과 이름, 다짐 등이 실렸다. 배씨의 이름도 이 곳에 들어있다. 그는 벌써 '설렁탕 집 사장'이라는 단 꿈에 빠져 있다.

박관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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