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과 채권단이 실시 중인 기업 구조조정 곳곳에서 허점이 발견되고 있다. 획일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잣대' 때문에 상당수 부실기업들은 신용위험평가조차 받지 못했고, 부도위험이 전혀 없는 기업이 퇴출 기업 명단에 버젓이 오르는 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끝난 시공능력평가 300위권 내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정기 신용위험평가에서 평가 대상의 3분의1에 이르는 100여곳이 신용위험평가를 아예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300위권 내의 중대형 건설사라 하더라도 ▦전체 금융권 빚이 500억원을 넘지 않거나 ▦500억원 미만이더라도 1개 은행으로부터 50억원 이상 대출을 하지 않은 기업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준 탓이다.
시공능력평가 200위권의 중견 건설사로 최근 부도를 낸 신한종합건설도 전체 빚이 329억원에 달했지만 이중 은행권에서 빌린 돈은 10억원에 불과해 평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신용위험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한데다, 현재 진행되는 기업 구조조정이 채권은행들이 주도하다 보니 은행권 빚이 많은 기업을 우선적으로 평가대상에 올릴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걱정스러운 것은 이 같은 문제가 앞으로 진행될 중소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이달부터 신용 공여액 50억원 이상~500억원 미만의 중소기업에 대해 신용위험평가에 나섰는데 평가 대상은 개별은행 신용공여 30억원 이상인 기업으로 한정됐다. 1개 은행으로부터 30억원 이상을 빌리지 않으면 부실 중소기업들이라도 신용위험평가를 받기도 전에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셈이다.
특히 채권단이 실시한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대해서도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정기평가에서 채권단으로부터 퇴출 기업(D등급)에 포함된 대선건설의 경우 장부상 빚이 900억원에 이르렀지만 대부분 대주주의 예금을 담보로 낸 빚이었다. 언제든 갚을 수 있는 부채고 회사의 유동성 문제도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장부상 부채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퇴출 대상으로 분류된 것. 주채권 은행 관계자는 "평가기준에 따르면 예금 담보가 설정돼 상환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평가항목에 없었고 총 평가 점수가 55점 미만으로 나와 D등급으로 분류했다"고 말했다.
김종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행 신용위험 평가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상시 구조조정'의 틀이 제대로 짜여지지 않아 발생한 것"이라며 "금융당국과 은행들이 공통기준을 마련해 한꺼번에 기업을 평가하고 정리하는 현행 방식에서 벗어나 개별 은행이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시기와 관계없이 기업의 옥석을 가려 정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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