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브라운관에는 시대극 돌풍이 거세다. 지난주(6.28~7.4) 주간극 시청률 순위(AGB닐슨)에서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KBS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1위ㆍ31.3%)와 SBS 월화드라마 '자이언트'(3위ㆍ13.6%)가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시대극은 일정한 역사적 시기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 드라마다. 하지만 요즘의 시대극은 시대를 해석하는 코드가 과거와 다르다. 옥이이모(1995), 육남매(1998) 등 시청자의 뇌리에 깊이 남아있는 대표적인 시대극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제빵왕 김탁구'와 '자이언트'에서의 7,80년대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시청자를 향수에 젖게 하기보다는 드라마 속 갈등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7,80년대는 막장 코드의 면죄부
현대극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설정들이 '7,80년대 배경의 시대극'이라는 한 마디로 용인된다.
'제빵왕 김탁구'는 초반에 다양한 선정적 요소를 배치해 막장 드라마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남아선호사상이 지나치게 부각된 점에 대해서 한 제작진은 "시대적 배경일 뿐"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종영한 KBS 주말극 '수상한 삼형제'에서 현실성 없는 시어머니 캐릭터에 대해 "요즘 그런 시어머니가 어디 있냐"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자이언트'에서는 돈과 권력을 등에 업고 온갖 그릇된 일을 저지르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군사정권 아래 개발기의 혼란스러운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하면 수긍할 수 있는 설정으로 탈바꿈한다. 살인과 고문, 패싸움 등 자극적인 소재도 시대극이라는 이름 아래 만사형통이다.
이런 극단적인 설정과 자극적인 소재들은, 두 드라마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의 성공과 성장이라는 중심 맥락을 극대화시킴으로써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허점투성이 고증
현재 방송되고 있는 '자이언트'의 시대 배경은 1979년이다. 극 속에 등장하는 건설사 회장들과 중앙정보부 인사들은 지하철 공사 입찰권을 둘러싸고 이전투구를 벌인다. 하지만 1980년 10월 31일 신설동-종합운동장 구간을 처음 개통한 서울 지하철 2호선은 1978년 3월 9일 기공식이 열렸다. 1,500년을 거슬러 올라간 '선덕여왕' '김수로' 등의 사극도 고증 논란을 피해갈 수 없는데 겨우 3,40년 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이런 지적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고증에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삼일빌딩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하는 데는 공을 들였을지 몰라도 현대적 감각이 물씬 풍기는 배우들의 헤어스타일과 복장, 배경으로 스쳐 지나가는 2000년대 차량들은 시대적 배경과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제빵왕 김탁구'도 마찬가지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거성그룹 회사 천장에 요즘에 볼 수 있는 반구형 CCTV가 달려있고, 80년대 공항에 LED 전광판이 설치돼 있는 장면을 꼬집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자이언트'의 오세강 CP는 "소품이나 미술에 신경을 쓴다고 써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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