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7시 40분께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기타를 둘러멘 남녀가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그룹 넥스트의 기타연주자 김세황이 모습을 드러냈고, 한상원밴드의 한상원, 그룹 노브레인의 정민준도 나타났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자제로 유명 기타연주자인 신대철ㆍ윤철 형제의 얼굴도 보였다. 홍익대 앞을 무대 삼은 무명의 기타연주자들도 있었다.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보컬 겸 기타연주자 김종진이 2일 오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에 올린 번개모임(즉석 만남) 제안 글에 호응해 속속 모인 것이었다.
김종진의 트위터 글은 "토요일 신중현 선배님의 공연 리허설이 있다고 하니 저녁 8시 반에 그곳에 모여 신중현 선배님께 후배들이 함께 하고 있노라고 말씀 드립시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4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신중현 헌정 기타 기념 콘서트'의 성공을 위해 응원의 힘을 전해주자는 취지였다. 한상원은 "학창시절 흉내도 많이 내고 존경했던 분을 위한 모임이니 빠질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기타연주자는 27명으로 웬만한 한국 대표 기타연주자들이 다 모였다. 이들은 곧바로 사진가 김중만씨의 카메라 앞에 섰다. 신중현의 공연을 축하하며 그에게 기념으로 줄 사진 촬영을 위해서였다. 김씨는 "15세에 한국을 떠날 때 신중현 선생님은 제 우상이었다. 그를 위해 사진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드리고 싶어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 리허설과 4일 공연 장면 등을 촬영한 김씨는 모든 저작권을 신중현에게 헌정할 예정이다.
사진 촬영이 끝나자 모임은 인근 빈대떡 집으로 이어졌다. 막걸리와 맥주, 파전 등을 놓고 앉은 일행들에게 김종진은 3차례 연속 건배를 제안하며 기타연주자들의 단합을 강조했고, 음악에 대한 결의를 다졌다. "그 분 안 계시면 우린 손가락도 없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기타의 아버지 신중현 선생을 위하여." "지금 한국음악계는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기타연주자가 열심히 활동할 때가 한국 음악의 부흥기였습니다. 한국 음악계를 위하여." "우리는 부모님 속 엄청 썩이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여기서 주저앉을 수 없습니다. 우리 기타연주자들을 위하여…."
건배에 대한 환호와 박수와 웃음이 2m가량의 낮은 천장 아래 울려 퍼졌고 계속된 술자리는 선후배의 통성명과 격려로 훈훈했다. 김종진은 "기타는 부모님한테 손 벌리지 않고 자기가 벌어서 사야 한다. 그래야 애정이 간다"며 어린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신대철은 "이런 모임은 처음이다. '우리가 너무 모이지 않았구나 이런 자리가 앞으로도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모임을 반겼다.
이날의 술자리는 날을 넘겨 즉석 기타 연주가 이어받았다. 4일 새벽 귀가하던 김종진이 트위터에 남긴 글엔 기쁨이 넘쳤다. "한국 음악 10년을 거머쥘 에너지를 받았습니다! 하늘이 참 아름답네요. " 김종진 등 이날 모임에 참석한 기타연주자들은 4일 신중현 공연을 함께 관람했다.
글ㆍ사진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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