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한 고교 3학년생으로 진학 준비 대신 일을 선택한 정모(17)군은 요즘 집 근처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의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총 11시간. 손님이 늦게 나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오후 9시까지 12시간을 일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씨가 하루에 받는 급여는 고작 4만원.
명목상 근로시간인 오후 8시까지 11시간으로 나눠도 시간당 3,636원의 임금을 받는 셈이다. 이는 올해 최저임금인 4,110원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정씨는 일을 시작하며 식당 사장에게 최저임금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미성년자지만 근로계약을 체결하며 부모 동의서를 받은 일도 없다.
최근 정씨는 하도 억울해 노동부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그는 "아무리 청소년이라고 하지만 최저임금은 지켜 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같이 일하는 형이 옆 가게에서 시간당 4,500원의 급여를 주는 것을 보고 사장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잘리는 것을 본 뒤로는 얘기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2일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5.1% 오른 4,320원으로 정했다. 매년 그렇듯 올해도 노사 대립으로 확정까지 우여곡절이 컸다. 이처럼 어렵게 결정됐지만 최저임금제는 사실 급격히 무용지물화하고 있다. 누구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이 지난해 1만4,869개로 2007년 4,072개의 3배로 늘어났다고 5일 밝혔다. 이는 점검 업체 2만5,505개의 58.4%에 이르는 것이다.
노동부의 의지 부족
최저임금 위반 신고가 가장 많은 업종은 PC방 주유소 체인스토어(피자 제빵 아이스크림 등) 마트 편의점 미용실 음식점 독서실 청소업체 용역업체 등으로 주로 청소년들이 일하는 곳이다.
청소년이라고 해서 최저임금 적용에서 예외는 아니다. 최저임금법은 사업자가 근로자에게 해당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도록 하고 최저임금액을 알려 줘야 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근로 관련 법규에 대한 상식이 부족하고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약자라는 점을 악용해 최저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이다.
당장 노사 관계에 모범이 돼야 할 대기업의 체인부터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 서울에 사는 이모(21)씨는 한 아이스크림체인에서 일하며 올해 최저임금 4,110원에 못 미치는 4,000원을 받고 일하고 있다. 이씨는 점주에게 항의를 해 봤지만 이런 사정은 바뀌지 않았다. 점주는 오히려 돈을 아끼려고 아르바이트생들에게 3개월에 한 번씩 다른 사람 명의의 통장으로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씨는 "힘 없는 20대들이 돈을 벌어 보겠다고 하는데 최저임금을 주지 않거나 성과급과 야근수당을 떼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집중 단속을 벌여 달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이 잘 지켜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주무 관청인 노동부의 의지 부족이다. 노동부는 매년 9월께 용역으로 최저임금 실태를 조사하고 있지만 조사 인력 부족으로 매번 점검 갔던 곳을 다시 가는 식의 단속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또 노동부의 최저임금 단속은 거의 전적으로 신고에만 의존해 펼쳐질 뿐 자체 기획에 의한 단속은 거의 없다. 근로자들이 내부 고발을 할 경우 당할 불이익을 우려해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에 기획 단속이 없으면 사실상 최저임금은 무방비 상태에 빠지게 된다.
최저임금법 소극적으로 해석
최저임금 의무를 가장 잘 지켜야 할 정부가 이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가 시행하는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차상위계층에게는 4대 보험 외에 월 급여가 60여만원만 주어진다. 이는 최저임금제에 따른 월 급여 70만원에 한참 못 미친다. 더구나 2009년과 지난해 자활급여는 2년 연속 동결됐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복지부 자활사업은 나름대로의 자활 능력을 키우기 위한 후견인 사업의 일환"이라며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일환이기 때문에 근로자로 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법 적용의 맹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수습사원의 경우 3개월 동안 최저임금 이하로 급여를 지급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노동부는 아르바이트생도 수습일 경우 월급을 차감 지급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씨의 경우처럼 업주가 3개월에 한 번씩 타인 명의의 임금통장으로 임금을 지급해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 지급을 정당화하는 웃지 못할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청년 권익 단체인 청년유니온에 따르면 5월 전국 6개 지역 427개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44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5.8%가 2010년 기준 최저임금인 4,110원 미만의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편의점별로는 훼미리마트 73.3%, GS25 62.9%, 세븐일레븐 57.1%, 바이더웨이 47%, 미니스톱 76.9% 가 최저임금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일본의 경우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뽑기 위한 광고문에도 반드시 임금을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임금 공고를 하지 않거나 액수를 위반하는 업체에 대해 단속을 철저히 하기 때문에 '우리 사업장은 최저임금을 지킵니다'라는 문구를 게시하는 곳도 많다.
최저임금법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자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근로자에게 최저임금을 알리지 않는 사업자에게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릴 수 있다. 하지만 노동부의 단속이 형식적이어서 이를 근거로 처벌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최저임금법은 사실상 사문화했다"며 "노동부가 최저임금 위반 사업장 고발센터를 본부나 지역노동청 산하에 만들고 제3자 고발이 가능하게 하는 등 적극적 노력을 펼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은 갈수록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
강성명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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