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ㆍ1731~83)은 일찍이 과거 공부를 포기하고 36살에 연행사를 따라 중국에 다녀온 연행(燕行)을 평생 보람으로, 18세기를 산 실심실학자였다. 2,600여 쪽에 이르는 국문본 과 함께, 이 여행체험을 바탕으로 자기의 사상을 집대성한 철학소설 을 남겼다. 책은 조선의 학자 허자(虛子)와 의산에 숨어사는 실옹(實翁)의 대화체로 쓰였다.
"오륜(五倫)과 오사(五事ㆍ외모와 말과 생각)는 사람의 예의다. 사람의 눈으로 만물을 보면 사람은 귀하고 만물은 천하며, 만물의 눈으로 사람을 보면 만물이 귀하고 사람은 천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처지에서 바라보면 사람과 만물은 평등한 것이다."
30년 공부로 천리(天理)를 깨쳤다던 허자가 실옹을 만나 새로운 깨달음에 이른 결론으로, 생태주의 생명사상을 일찍이 갈파한 선구적 주장이라 할 만하다. 이른바 홍대용의 '인물균(人物均)'사상이며, 사람은 물론 자연과 사람이 차별 없는 평등의 생명사상을 담고 있다. 이런 이치로 우주에는 위와 아래도 없고, 안과 밖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만물 가운데 스스로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고, 사람이 사는 지구가 태양계의 중심이며 또한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여, 자연지배는 이제 자연의 대반격에 직면했다. 그러나 지구는 태양계의 중심이 아니며, 무한한 우주의 한 별에 지나지 않는다. 태양계 또한 무한한 우주의 한 별무리에 지나지 않으며, 이런 별무리는 우주에 무한하다. 이것이 무한한 우주 속에서는 중심이란 따로 없다는 홍대용의 이다. 지구가 태양계의 한 중심이면서 우주의 한 중심이듯이, 내가 있는 자리가 한 중심이다.
이런 원리라면 역사에도 중심은 없다. 가 중국의 역사라면, 각 민족은 각 민족의 역사가 있다는 것이 의 이른바 역외춘추론(域外春秋論)이다. 이것은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라는 중화 중심주의를 타파했다. 중세 보편주의를 벗어나 자기 역사를 중심에 놓는 이런 역사의 깨달음은 18세기 조선 실학에서 비로소 나타난 역사의 자각이었다. 이것은 저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이른바 호락논쟁(湖洛論爭), 곧 사람과 사물의 성질은 같은가 다른가를 다투어 온 논쟁의 1세기에 걸친 축적이며, 조선 철학이 이른 큰 도달점이었다.
18세기 홍담헌의 고뇌는 (창비)과 같은 평화운동을 이어 온 사진작가 이시우(1967~) 선생에게서는 사람 몸의 중심을 묻는 질문으로 구체화한다. "아픈 곳이 치유될 때까지는 온통 신경이 거기에 집중되기 때문에" 몸의 중심이 아픈 곳이듯, 사회의 중심도 아픈 곳이다. "세계의 중심 또한 전쟁과 기아와 빈곤으로 인하여 '아픈 곳' 입니다. '아픈 곳'에 사회의 모순과 세계의 모순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시대의 중심에 서고자 하는 예술가에게 그것은 숙명의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이시우 )
동국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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