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격전지 체코서 글로벌 메이커 추월 '현대차는 질주 중'
지난 달 체코 프라하 외곽의 현대자동차 판매전시장. 평일 오후인데도 10여 명의 현지인들이 현대차를 꼼꼼히 살펴 보고 있었다. 현대차 이근영 차장은 "지난 해 유럽형 준중형급 i-30이 인기를 끈 데 이어 올 3월부터 판매에 들어간 ix-35(투싼 ix)는 없어서 못 팔 정도"라며 "체코 시장 점유율이 현재 5위(5.2%)인데, 이런 추세라면 르노(7%)를 제치고 올해 4위 목표달성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체코는 예로부터 자동차 시장의 격전장으로 불려 왔다. 1895년 설립한 '국민차' 스코다(SKODA)가 그 동안 철옹성처럼 버텨왔지만, 1991년 독일 폴크스바겐에 인수 된 뒤 시장 점유율이 30%를 밑돌 정도로 그 영향력은 추락했다. 그 틈을 비집고 포드, 르노, 도요타 등 다른 메이커들의 치열한 시장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도전장을 던진 현대차의 상승세가 무섭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차장은 "지난해 9월 노소비체 현대차 공장이 가동을 시작하고 현대차가 체코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후원사가 되면서 인지도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며 "2013년까지 46개 딜러숍에서 전시장 내부의 환경 개선과 함께 '찾아가는 서비스'를 도입, 서비스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첫 유럽 생산기지는 프라하에서 동쪽으로 자동차로 4시간 거리에 있는 국경 소도시 노소비체에 있다. 김억주 법인장은 "이 곳은 유럽 자동차전쟁의 현장 컨트롤타워"라며"전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동차 본고장인 유럽시장의 공략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노소비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 법인장은 "유럽연합(EU) 역내에서 무관세 교역이 가능해 관세혜택을 볼 수 있고, 지리적으로 동ㆍ서 유럽을 잇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슬로바키아 질리나의 기아차 공장과 부품, 완성차를 모두 공유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소비체 공장과 질리나 공장의 거리는 85km. 트럭으로 2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두 공장은 20개 가까운 협력사를 공유하고 있다. 한 회사에서 함께 부품을 공급받기 때문에 물류비를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게다가 현대차 공장에서는 변속기를, 기아차 공장에서는 엔진을 만들어 상호 공급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도 실현할 수 있다.
현대차 공장에서는 지난 해 11월부터 기아차의 소형 다목적차량(MPV) '벤가' 생산을 시작했다. "현대차 공장에서 기아차를 만드는 '교차 생산'은 국내외 생산기지 중 이 곳에서 처음 시도하는 것"이라는 게 현대차 관계자의 설명이다. 슬로바키아 기아차 공장에서는 현대차 '투싼 ix'를 만들고 있다. 현재 연간 20만 대의 생산량이 2011년부터는 30만대로 늘어날 예정이다.
현대차의 성공적 연착륙 효과는 동반 진출한 계열사 및 협력 업체까지 번지고 있다. 운전석 내장재, 시트백 프레임 등 자동차 부품 소재를 생산하는 한화 L&C가 대표적이다. 현대차 공장에서 20km 떨어진 프리덱미스텍시(市)에 있는 한화 L&C 체코법인은 최근 유럽의 한 유명 자동차 메이커와 카 시트 부품 공급 계약을 맺었다. 지난 해 10월 공장을 가동 한 후 유럽 현지 자동차 회사와 첫 계약이다. 박영일 법인장은 "가장 중요한 고객은 현대차이지만 체코를 발판으로 유럽 자동차 부품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대모비스도 '트롤리 컨베이어 시스템'(천장의 레일을 통해 필요한 시간에 정해진 순서에 맞게 부품이 자동 공급되는 것) 등 첨단 시설과 유럽 현지인들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 개발을 통해 현대차의 든든한 동반자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자체적으로 유럽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 현대차 프로젝트 담당 맡은 로버트 슈르만 체코 통산부장관 특보
현대차 프로젝트 담당 체코 통상산업부 장관 특별보좌역(차관급). 로버트 슈르만씨의 공식 직함이다. 프라하의 집무실에서 만난 그는 "체코 정부가 외국 기업 전담 보좌역을 둔 것은 현대차 뿐"이라며 "그 만큼 현대차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더구나 슈르만씨는 지난 정부의 통상산업부 차관이었다. 현대차의 체코 진출 프로젝트의 체코 측 실무를 담당했던 그는 2007년 2월 정권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현대차 관련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는 프라하에서 고속열차로 3시 반 걸리는 현대차 공장을 수시로 들러 현대차 측으로부터 교통, 운송, 환경 등 정부 차원에서 지원할 부분이 있는 지를 듣고 이를 관계 부처에 전달한다. 또 현대차가 체코 정부와 약속한 인력 채용 등 투자 계획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도 점검한다.
슈르만씨는 "현대차의 체코 투자 비용 10억유로(1조7,500억원)는 체코 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직접 투자"라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차는 2006년 체코 정부, 체코 투자청, 모라비아-실레지엔 주 정부와 맺은 투자 협약 내용을 빠짐 없이 지키고 있다"며 "체코 정부 역시 금융 위기로 국가 예산이 줄었지만 현대차에 대한 지원은 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체코 상공부에 따르면 현대차는 현재 2,200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있고, 동반 진출한 계열사 및 협력업체까지 포함하면 1만 명 가까운 고용 창출을 이뤄냈다. 슈르만씨는 "현대차는 어떤 외국 기업보다 빠른 시간에 공장 건설을 끝내고 양산을 시작했다"며 "경영 성과 등 필요한 정보를 체코 정부에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슈르만씨는 "현대차가 자동차 본고장 유럽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안다"며 "체코 공장이 그 성장의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 뿌듯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체코 공장 제품의 유럽 수출이 이뤄지면 체코 정부로서도 수출과 수입의 균형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 '새벽 6시반 출근 오후 2시반 퇴근' 현지인 습관 맞춰
현대차의 체코 진출 과정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 환경 단체들의 반발이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동차 공장 하면 굴뚝이 들어서고 환경 오염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고 전했다. 과거 수 십 년 동안 이 지역은 대규모 철강 공장이 자리했고, 심각한 환경 오염을 겪어온 터여서 반발은 꽤 컸다.
김억주 법인장은 "첨단 자동차 공장은 환경 오염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며 "슬로바키아 기아차 공장에 안내해 설명했더니 지역 주민들이 조금씩 누그러졌다"고 설명했다.
2007년 4월 어렵사리 첫 삽을 떴지만 공사 역시 쉽지 않았다. "공장이 들어설 200헥타르(60만 평)의 양배추 밭 중간중간 숲이 있었다"는 김 법인장은 "처음엔 나무를 벨까 했지만 환경 피해를 최소화 하기 위해 옮겨 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현대차 측은 양배추 밭에 있던 나무 1,100여 그루를 근처로 그대로 옮긴 뒤 공사가 끝난 다음 공장 울타리 안으로 다시 옮겨 심었다. 부지의 표토 역시 30cm를 떠서 땅 다지는 작업이 끝난 후 다시 뿌렸다.
현대차 관계자는 "해외 생산 기지의 성패는 현지인들과 얼마나 잘 호흡을 맞추느냐에 달려있다"며 "환경을 중시하는 지역 주민의 뜻을 반영하기 위해 애썼고, 그 결과 여론이 많이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얼마 전 갑작스런 폭우로 체코 일부 지역에 물난리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 이재민에게 위로를 전하고 격려금을 전달했다. 또 지역의 가장 큰 행사인 나토(NATO)데이 공군 행사의 메인 스폰서로도 활약 중이다.
공장 운영 시간도 특이하다. 체코 공장 낮 근무자들은 오전 6시30분에 일을 시작해 오후 2시 반에 일을 끝낸다. 정주용 과장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체코 사람들의 생활 습관에 맞춰 근무 시간을 조정한 것"이라며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는 현지 직원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 매우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프라하·노소비체·프리덱미스텍(체코)=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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