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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두 번째 오랜 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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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두 번째 오랜 직업

입력
2010.07.0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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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에 관한 논쟁은 사실 과학이라기 보다는 호사가들의 한담에 가까운 것이다. 어떻든 사냥이나 농사 등 생계를 위한 기본적인 노동행위를 제외하고, 매매나 교환을 통한 재화획득 수단의 관점에서 봤을 때 매춘이 최초의 직업이었을 것이라는데 별 이의가 없다. 원시시대에도 분명 식량과 육체의 교환이 있었으리라고 추정되는데다, 고대 중동이나 인도 등지에서 매춘이 사원 매음(temple prostitution) 형태로 널리 퍼져있었다는 사실이 기록에도 남아있다는 게 주요 근거다. 그러면 두 번째로 오래된 직업은? 스파이란다.

■ 역시 믿거나 말거나 식 주장이지만 여기에도 나름의 근거는 있다. 어디든 경쟁과 갈등이 있는 곳이면 상대의 동태를 파악하는 일이 필요했을 것이고 원시 부락 간에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모세를 이은 유대 지도자 여호수아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여리고에 2명의 첩자를 파견했다는 구약성서 내용이 스파이에 관한 역사상 첫 기록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이미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에서는 국가가 관리하는 첩보원 프록세노스가 등장한다. 트로이 목마를 적을 내부에서 무너뜨린 스파이 활동의 비유로 보는 견해도 있다.

■ 최근 미국 내 러시아 스파이 10명이 체포된 사건으로 동ㆍ서 간의 맹렬한 스파이전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영국 정보기관 MI5의 전 국장이 "영국도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밝혀 스파이가 흘러간 냉전시대의 유물이 아닌, 광범위하게 현존하는 안보 위협임을 새삼 인식시켰다. 사실 냉전 종료 후에도 주요국의 정보기관은 전혀 구조 조정되지 않았다. 러시아만 해도 이번에 문제 된 KGB의 후신 FIS(해외정보국)를 포함, 최소한 4개 이상의 방대한 국가 정보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도 물론 다를 게 없다.

■ 그런데도 스파이사건은 자주 흥미로운 스캔들처럼 받아들여진다. 이번처럼 팜므 파탈이 개입된 경우엔 더욱 그렇다. 그러고 보면 삼손을 파멸시킨 데릴라부터 삼국지의 초선, 1차 대전 때의 마타하리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유명한 스파이사건은 대개 성과 로맨스가 결합한 형태였다. 우리에게도 배정자, 김수임 훨씬 이전에 사랑 때문에 조국을 패망케 한 낙랑공주가 있었다. 냉혹한 국제관계의 반영인 스파이는 다른 한편으론 인간의 어두운 관음적 본성과도 연결돼 있다. 매춘만큼 일찍 생겨나고, 또 앞으로도 끝내 사라지지 않을 이유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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