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약속이 있으면 도시철도를 이용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7번 국도를 이용하면 부산교통공사 노포동역이 가깝다. 노포동역이 도시철도가 출발하는 역이어서 앉아갈 수 있어 좋고 중앙동이나 남포동의 약속장소까지 가면서 주머니에 넣어간 시집 한 권쯤 읽고 갈 수 있어 좋다.
예전처럼 승차권을 끊기 위해 줄을 설 필요도 없다. 놀랍게도 우리 동네 마을버스에서 사용하는 교통카드가 그곳에서도 통한다. 1978년인가 서울에 지하철이 개통되었을 때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 기분이었다. 땅속으로 기차가 다닌다는 것이 꿈이었다.
그 이후 지상의 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차량들로 나날이 최악의 교통체증에 시달릴 때 지하의 길은 빠르고 정확해져갔다. 최근 부산 도시철도가 달리는 지하공간에서 문화공간으로 진화를 시작했다. 도시철도역에 갤러리가 있고 북카페가 생겼다. 거기에 더하여 역마다 시(詩)가 꽃피기 시작했다. 역마다 계절에 맞는 시가 걸려 그 시를 읽다보면 시꽃이 핀 꽃밭이 들어선 것 같다.
도시철도는 이젠 교통수단이 아니다. 도시철도는 사람을 위한 문화공간이다. 모두 92개의 공간과 하루 입장객 80만명을 가진 '살아있는 문화'다. 가끔 한 량쯤 빌려 서울 '지옥철'이 꿈도 꾸지 못하는, 부산 '휴메트로'만이 할 수 있는 바다 내음 물씬 나는 시낭송회를 열면 정말 신날 것 같은.
정일근 시인·경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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