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리 질 지음ㆍ이광조 옮김/삼인 발행ㆍ424쪽ㆍ1만8,000원
미국 조지아주 콜럼버스 남쪽 포트 베닝 기지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미 육군 아메리카 군사학교(SOA). 미국이 뒷마당으로 여기는 중남미 국가들의 장교를 훈련시키는 곳이다. 1946년 파나마 운하지대의 미군 기지 내에서 창설된 SOA는 1984년 미국으로 옮겨졌으며 그 동안 6만 명이 넘는 중남미 군인들에게 전투기술과 반란진압 훈련을 시켜왔다.
미 밴더빌트대학 교수 레슬리 질의 는 1990년대에 SOA가 중남미 독재자들의 하수인인 군 장교들에게 고문과 살인, 테러를 가르치는 학교라는 사회적 비난을 받은 후 SOA를 면밀하게 조사해 그 실체를 그려내고 있다.
1973년 9월 11일 선거로 선출된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킨 쿠데타 주역들은 대부분 SOA 출신들이었다. SOA 졸업생 가운데 악명 높은 이들로는 파나마의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1976~1983) 기간에 살인과 납치, 고문을 저질러 유죄 판결을 받은 로베르토 비올라, 엘살바도르에서 1,000명에 이르는 민간인 학살을 지휘한 도밍고 몬테로사, 온두라스에서 암살부대를 지휘한 알론소 디스쿠아 등이 있다.
저자는 SOA 훈련생들의 훈련생활을 참관하고, SOA를 졸업하고 군 장교로 복무한 이들, 군대로부터 피해를 당한 콜롬비아와 볼리비아의 코카 재배 농민들, SOA 반대 활동가 등을 면담했다. 미국과 중남미의 군인들이 SOA에서 어떻게 군사훈련을 받는지, 그들이 풍족한 미국식 생활방식에 어떻게 마음을 빼앗기는지, 본국으로 돌아간 후 미국과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어떻게 직업적 신분상승을 하는지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SOA는 매년 600~800명의 군 장교와 경찰 간부를 배출했다. 하지만 미군이 미 본토 안팎에서 훈련시키는 동맹국 군인들은 매년 10만명에 이른다. 미군과 외국 군인을 함께 훈련시키는 훈련소와 군사학교는 공개된 것만 미 본토에 최소 150개나 된다. 저자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미국이 동맹국의 군인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협력을 확보하는 방식을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SOA를 통해 미국이 중남미에서 어떻게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해왔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미 제국의 자본주의 질서를 유지시켜 주는 군인들의 힘으로 이뤄졌으며 그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미국은 영토를 점령하는 대신 미국이 선호하는 현지 지도자를 무장시키고 필요할 경우 군사적으로 개입했다. 또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차관 제공, 외교적 압력 등을 사용하기도 했다. 미국의 지원으로 중남미 각국의 군부 엘리트는 무력을 쉽게 행사할 수 있었고, 미국은 SOA 등에서 형성된 미군과 이 지역 군 장성 및 경찰 간부 간의 인적 유대 덕분에 동맹국들을 잘 통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SOA는 고문과 살인을 가르친다는 비난을 의식해 2001년 서반구안보협력연구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러나 9ㆍ11 테러 이후에는 예전보다 훨씬 많은 연수생들이 등록하고 있다고 한다. 미 제국의 성벽을 지키는 새로운 장교집단이 계속 충원되고 있는 것이다.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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