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반의 개혁… 월가의 병폐 뿌리뽑을까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은 미국의 천재 사기꾼 프랭크 애버그네일을 쫓는 우직한 FBI 요원 칼 핸러티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칼은 프랭크의 속임수에 번번이 당하다가 결국 그를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미국 금융감독 당국과 월가 대형은행들도 이 두 사람처럼 쫓고 쫓기는 관계였다. 과연 이번에는 감독당국이 월가를 잡는데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달 25일 미국 의회는 1년여 동안 끌어온 금융개혁법안을 놓고 20시간이 넘는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최종합의에 도달하였다. 개혁법안은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비판 받아 온 월가 대형은행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법안의 핵심 조항은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종식(일명 볼커룰)이다. 대형 금융기관이 과도한 위험 투자로 금융시스템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자금 거래(고객 거래를 알선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행이 자기자금으로 하는 직접 투자)를 전면 금지했다. 또한 헤지펀드와 사모투자펀드에 대한 투자도 기본자본의 3% 이내로 제한했다.
파생상품거래의 투명성 강화를 위해 규제제도를 도입하고 거래소와 청산소를 통해 거래와 자금결제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또한 신용디폴트스왑(CDS)과 같이 위험성이 높은 파생상품 투자는 별도의 회사를 따로 설립해서 하도록 하였다. 일종의 방화벽(firewall)을 설치하여 유사시 리스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다만 은행들의 자체 위험회피를 위한 외환 및 금리 스와프 등은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아울러 정부가 국민세금으로 부실 금융기관을 지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주도하에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하고, 정리비용은 나중에 해당 금융기관의 자산을 매각하여 충당하도록 했다.
이밖에 월가 규제는 아니지만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시스템리스크 대응체계 개선, 연준의 투명성 증대 등 굵직한 사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경제적 약자인 금융기관 고객보호를 위해 연준에 독립 조직인 소비자금융보호국을 신설하여 대통령이 임명하는 최고 책임자가 독자적으로 예산을 수립하고 정책을 집행하도록 했다.
이번 금융개혁법안은 상업은행 업무와 투자은행 업무를 엄격히 갈라놓은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 이후 이루어진 가장 과감한 조치로 평가 받고 있다. 하지만 최종 합의안을 받아 본 은행들은 일단 안도하는 모습이다. 헤지펀드와 사모투자펀드 투자가 제한적이지만 여전히 가능하고, 위험도가 낮은 파생상품투자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자금거래 금지가 은행 수익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종 합의안 발표 당일 주요 은행의 주가가 상승한 것은 이번 개혁안의 강도를 짐작케 한다. 그러다 보니 강력한 규제를 주장해온 측에서는 불만이다. 이들은 위험한 투자가 예외적으로 허용됨으로써 대형은행의 고수익-고위험 투자 관행이 근절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금융개혁법안이 발효되려면 상하 양원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하원은 6월30일 의결절차를 마무리 했으나 상원은 로버트 버드 민주당 의원 타계와 공화당 의원의 반대 등으로 아직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상원의결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미국의 대형은행들은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때마다 각종 규제회피 수단을 마련하는 등 자신들만의 고유한 생존방식을 만들어왔다. 특히 골드만삭스 등 대형은행 간부들의 관료사회 진출이 활발해 역대 재무장관 중 상당수가 대형은행에 근무하였고 퇴임 후 은행으로 복귀하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이와 같이 미국의 금융당국과 금융업계는 '오늘의 자신'이 '미래의 자신'을 규제하는 독특한 문화 속에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금융개혁 작업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어 월가 대형은행들의 체질을 바꾸고 대마불사의 잘못된 관행을 없앨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 반복적으로 경험했듯이 규제회피를 위한 새로운 금융상품이나 투자기법의 탄생 계기가 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윤숙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조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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