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바다 - 주경철 지음
茫茫大海(망망대해). 15세기 이전 인류의 눈에 비친 바다의 모습이다. 무한히 펼쳐진 바다의 장벽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문명을 오랜 세월 동안 단절시켰다. 이는 단순히 물리적 의미만 아니라, 바다에 대한 두려움이나 관념과 인식의 단절마저 일으켰다. 하지만 그런 인식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새로움을 갈망하던 사람들이 바다로 나아가면서 바야흐로 대 항해시대가 펼쳐진다. 대격동의 시기, 바다의 주역이라 하면 서양 문명을 떠올린다. 또 그동안 많은 역사서가 서구 중심의 사관으로 바다를 바라 보았기에 다각적 시선으로 근대를 통찰한 경우를 찾기 힘들었다.
그런데 이런 아쉬움을 해소하는 책이 있었다. 서울대 주경철 교수가 쓴 였다. 종합상사 사장인 필자는 세계 교역의 90%가 이뤄지는 바다가 인류의 삶과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심을 가져왔기에 이 책은 더욱 와 닿았다.
는 주 교수의 객관적이고 섬세한 시각이 돋보이는 책이다. 서두에 나오는 지역이 기존 근대사를 주름 잡던 유럽이 아닌 아시아라는 점에서부터 작가의 그런 의식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중국 명나라 초기(1405년)에 있었던 환관 정화가 영락제의 명령으로 대원정에 나섰다는 얘기는 인상적이다.
160여 척의 함선에 2만~3만명의 인원을 통솔하며 총 18만5,000km를 항해한 이 원정은 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사업이었다. 하지만 이 원정은 영락제 이후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저자는 이 때문에 중국이 근대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근대 초기 유럽은 어떤 상황이었을까. 당시만 해도 아시아에 비해 국력이 강하지 않았고 먼 바다를 항해할 만큼 항해술이 뛰어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바다로 나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정과 도전 정신이었다.
유럽 각국이 아메리카와 인도 등에 거점을 만들어 현재까지도 강한 영향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을 보면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시대에도 바다는 존재한다. 하늘, 우주, 그리고 인터넷 등이 21세기의 바다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새로운 바다를 '장벽'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길'로 볼 것인가. 해답은 자명하다.
지성하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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