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용어 정리부터 해두자. 며칠 전 한미 양국 정상은 11월 미 중간선거 때까지 미해결 쟁점을 해결하고, 이후 미 의회에 한미FTA 이행법안을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미해결 쟁점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을 오바마 대통령은 '조정'이라고 불렀다. '재협상'이란 말을 한국 정부가 한사코 반대하기에 일종의 외교적 수사이자 립 서비스로 선택한 용어로 보인다.
자동차문제 '부속협정' 유력
반면 한국 정부는 이를 '실무 협의'라고 애써 그 격을 낮게 잡았다. 그런데 이 협의에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석할 것이라 한다. 대개 국제협상에서 실무협의는 과ㆍ국장급이 참석하고 그 위에 고위급 또 최고위급 회담이 놓이는 관례에 비추어 왠지 이상하다.
아무튼 뭐라 부르건 본질은 재협상이다. 왜냐하면 미국측이 말하는 미해결 쟁점이란 것이 특히 자동차인데, 이는 한미 FTA 협정문을 통해 이미 끝난 상태다. 그럼에도 이것이 한미 양국간 자동차 '불공정 무역'을 시정하기에 매우 미흡해 새로 협상하자는 것이 미국 요구의 핵심이다. 이미 합의된 수입관세 2.5%의'즉시'철폐를 못하겠다는 것이다.
쇠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2008년 부시 대통령의 한미 FTA '연내 처리' 언질을 믿고 미국이 요구한대로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을 개정했다. 하지만 촛불이라는 국민적 항의에 직면해 현재 한미 양국은'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자율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바로 이 자율 규제를 풀어 30개월 이상도 수입하라는 말이다. 2008년 개정된 가축법에 근거해 시행중인 수입위생조건을 바꾸는 것이기에 이 또한 재협상에 해당된다.
한미 간 미해결 사안을 풀기 위해서는 3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협정문 개정이다. 협상 용어로'리오픈(re-open)'이라 한다. 이는 우리 정부가 반대한다. 둘째, 협정문 원안대로 통과되는 것이다. 이는 미 의회가 반대한다. 셋째, 부속협정(side-agreement)이다. 미국은 1994년 북미 자유무역협정 당시 미국 내 환경단체와 노조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노동ㆍ환경 부속협정을 체결한 전례가 있다. 이 방식은 오바마 선거 캠프의 동아시아 자문역을 했던 허바드 전 주한 미대사 가 오래 전에 제안한 바 있다. 내가 아는 한, 미 무역대표부도 이 방식을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 역시 '협정문을 바꾸는 방식의' 재협상에 반대하는 것이지, 협정문을 바꾸지 않는다면 협상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시사해 왔다. 미 하원 FTA 소관 상임위인 세입세출위 위원장 샌더 레빈 역시 며칠 전 성명을 발표해 오바마가 제시한 11월 시간표는 미해결 쟁점이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enforceable) 약속"을 통해 "완전 해결될 때만"지켜 질 수 있다고 했다. 반드시 양국간 구속력이 있는 협정 등으로 자동차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으로 읽힌다.
현재로선 문제해결 방식으로 부속협정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문제는 내용이다. 한미 FTA 자동차부문은 우리 협상팀이 과거나 지금이나 가장 내세우는 부분이다. 정부측에게 자동차야말로 소위 '이익의 균형'을 지탱하는 버팀목인 셈이다.
11월까지 협상 매듭 어려워
쇠고기도 그렇다.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해 소비자 신뢰가 회복되었다고 볼 마땅한 경험적 근거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슨 수로 11월까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무슨 수로 한국 소비자가 갑자기 미국산 자동차를 폭발적으로 구매하고,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너도 나도 맛있게 먹게 할 것인가.
오바마 대통령이 자국의 정치일정, 곧 중간선거 때까지 마무리하자고 했지만 별로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남의 나라 정치일정에 맞출 이유도 딱히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가능해 진다면 그 경우는 딱 한가지. 협상을 포기하고 아낌없이 다 퍼주는 것 밖에 없지 않을까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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