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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리치 스토리] 마이클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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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리치 스토리] 마이클 블룸버그

입력
2010.07.0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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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가 기회였다, 돈·권력 모두 쥔 3선 뉴욕시장

미국 포브스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powerful) 억만장자'로 마이클 블룸버그를 선정했다. 금융정보 제공 단말기를 판매하고 통신사와 TV 등의 매체를 소유한 블룸버그사의 창립자로서 이 회사의 지분 88%를 소유한 그의 재산은 180억달러로 세계 23위, 미국 내 8위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의 중심 뉴욕을 이끄는 시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매번 대선 때마다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 점이 포브스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억만장자로 선정한 이유다. 아마도 선진국에서 '막대한 부'와 '정치적 권력'을 동시에 소유한 사람은 그와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총리 정도뿐일 것이다.

충격적인 해고를 창업의 기회로

블룸버그는 1942년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러시아에서 이민 온 유대인이었고 아버지는 회계사였다.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은 그는 66년 살로먼브러더스의 주식 트레이더로 입사했다.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낸 그는 초고속 승진, 79년에 파트너 지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81년 회사는 퇴직금 1,000만달러를 주고 그를 해고한다.

잘 나가던 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했지만 그는 오히려 충격적 해고를 창업의 기회로 삼았다. 퇴직금으로 금융회사에 꼭 필요한 다양한 금융정보를 실시간으로 컴퓨터에서 받아 제공하는 단말기를 만들어 판매하기로 한 것. 혁신적인 발상인 만큼 회사 명칭도 '이노베이티브 마켓 시스템'이라고 정했다. 이듬해 메릴린치가 22대의 '마켓 마스터' 단말기를 설치하고 3,000만달러를 투자해 30% 주주가 됐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메릴린치가 이 지분을 블룸버그에게 되팔긴 했지만, 두 회사의 인연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몇 주일 전 주가를 알려면 신문을 뒤져봐야 했을 정도로 낙후돼 있던 당시 증권업계에 마켓 마스터 단말기는 획기적이었고,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86년 블룸버그는 회사 이름을 블룸버그사(Bloomberg LP)로 바꾸었고, 이듬해 단말기 수는 5,000대를 돌파한다. 블룸버스사는 이후 단말기 외에도 증권사들이 필요한 서비스를 하나하나 추가해 갔다. 매매플랫폼, 메시징 서비스, 그리고 블룸버그 통신. 지금은 케이블TV와 라디오 채널, 잡지까지 거의 모든 매체로 금융정보를 전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전세계에 설치된 블룸버그사의 단말기는 25만대. 국내 금융회사들도 대부분 블룸버그사의 단말기를 활용하고 있다.

뉴욕 시장으로 제2의 인생 시작

2001년 그는 기업가가 아닌 정치가로 새 인생을 시작한다. 골수 민주당원이었던 그는 루돌프 줄리아니 전 시장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자 당적을 바꾸고 공화당의 뉴욕시장 후보로 선출됐다. 그는 유권자들에게 "민간 로비단체에 정치인들이 휘둘리지 않으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며 "부자가 시장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선거비용을 사재로 부담하겠다고 약속하고 무려 7,300만달러를 쏟아 부었다. 대신 그는 "시장 연봉은 1달러로 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2002년 시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얻은 노하우를 행정에 활용했다. 우선 욕은 먹더라도 재정부터 다졌다. 당시 뉴욕시의 재정적자는 60억달러에 이르렀고, 2001년 발생한 9.11 테러로 뉴욕시의 관광수입도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는 과감하게 재산세를 18.5% 인상했다. 지지율이 30%까지 폭락했지만 시 재정은 흑자로 돌아섰고, 관광객을 다시 모으기 위해 뉴욕시 홍보 마케팅을 강화하는 재원을 마련했다. 취임 이듬해부터는 2,500만달러를 들여 24시간 민원전화를 받아 신속하게 처리하는 시스템을 갖췄다. 예산 발표는 직접 챙겼다.

테러 직후 암울하기만 했던 뉴욕의 분위기는 점차 생기가 돌았고,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2005년 블룸버그는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2008년 대선을 앞두고 그는 공화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이 됐다. 이 때문에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출마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지난해 시장의 연임까지만 허용하는 뉴욕시 조례를 고쳐 3선에 도전했다.

지난해 선거는 여러 면에서 4년 전과는 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월가가 초토화되면서 뉴욕시도 세수가 급감했고 블룸버그의 인기도 떨어졌다. 민주당 후보인 윌리엄 톰슨 전 감사원장은 소상인, 소수계의 큰 지지를 받았다. 블룸버그는 무려 1억달러를 퍼부으며 '돈 선거'를 치른 끝에 가까스로 3선에 성공했다.

억만장자 정치가인 그의 다음 행보는 뭘까. 혹시나 정치인생의 마지막을 대권 도전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아닌지 세계인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스웨덴의 유명한 가구업체 이케아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를 소개합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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