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 간 역사적 화해와 미래에 대한 협력을 바탕으로 유럽연합(EU) 탄생의 주춧돌을 놓았던 프랑스와 독일이 최근 과거 어느 때보다 깊은 갈등을 빚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일 보도했다.
갈등의 정점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서 있다.
가장 최근의 갈등 주제는 그리스발 재정 위기 사태였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구제금융에 대한 자국 내 반감을 등에 업고, 프랑스가 주도한 EU 차원의 독자적인 그리스 지원에 반대했다. 독일의 반대 속에 재정 위기 해법 마련은 공전됐고 이 틈을 타 메르켈은 국제통화기금(IMF)을 끌여들였다. 사르코지가 피하고 싶었던 정적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IMF 총재의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WSJ는 유럽을 향한 독일의 태도 변화를 갈등의 한 배경으로 지목했다. 독일은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고통스런 과정을 이겨내며 경제 체질을 개선했고, 유럽 내 최대 경제를 일궈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고행을 겪지 못한 주변국들을 지원하는 데에 반발하는 기류가 생겨났다. “더 이상 유럽의 호주머니 역할은 싫다”는 분위기가 생긴 것.
메르켈이 최근 재정 위기 남유럽 국가들을 지원하는 데 소극적인 반면 피지원국들에 대해 혹독한 긴축을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독일 내에서 유럽에 대한 역사적 부채 의식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것도 한 요인이다.
유럽을 향한 독일 내 잠복된 불만은 앞서 글로벌 경제 위기를 거쳐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2008년 가을 사르코지는 유럽 은행권에 대한 EU 차원의 구제금융을 제안했지만, 메르켈은 각국의 자체 지원을 요구하며 거부했다.
더구나 두 지도자는 개인적인 스타일도 전혀 달라 자주 충돌을 빚었다. 적극적이고 과감한 사르코지는 국제 협상에서 최종 타결에 앞서 이를 독자적으로 발표해 다른 지도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반면 극히 조심스런 성격의 메르켈은 우유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지도자가 가진 공통점도 적지는 않다. 만 55세인 둘은 모두 자국 정치권에서 주류는 아니었다. 첫 이민자 출신 대통령인 사르코지는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지 못했고, 옛 동독 출신의 메르켈은 통일 이후에야 정치에 입문한 데다 가톨릭 남성이 주류인 보수 정치권에서 개신교 여성으로 고군분투했다.
WSJ는 두 지도자의 자국 내 지지도가 함께 추락하고 있는 것도 공통점이라고 꼬집었다. 1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사르코지의 국정 수행 지지도는 26%로 다시 최저치를 경신했다. 메르켈의 지지도도 바닥이다.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프랑스_독일 엔진 없이는 유럽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며 최근의 불편한 양국 관계를 우려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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