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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진보'를 욕보이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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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진보'를 욕보이는 이들

입력
2010.06.30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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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들으면 정말 그랬던 것 같고, 그러다 보면 저도 모르게 같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 어렸을 때는 북한사람들이 뿔 달리고 얼굴 빨간 괴물인 줄 알았다"는 얘기도 그런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리 어렸어도 사람이 정말 그렇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한 아이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위험하고 무서운 공산당을 비유한 그림이라는 것쯤은 다들 알았다. 진짜 그렇게 믿었다면 스스로 심각한 지적 장애아였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방북 목사의 기막힌 언행

많은 이들이 과거정권의 폐해사례로 반공교육을 든다. 그러나 적대감을 거칠게 드러냈더라도 사실과 아주 다른 내용은 아니었다. 적대감도 전쟁을 통해 극한의 고통과 공포를 겪은 국민이 북한에 대해 느낀 두려움과 경계심의 자연스러운 반영이었다.

1960년 4ㆍ19 혁명으로 출범한 민주당정권은 우리 헌정사에서 가장 민주주의가 만개한 시기로 꼽힌다. 그 시절 장면 총리의 4ㆍ19 1주년 기념사는 이후 권위주의정권의 교육내용과 차이가 없다. "…이북동포들은…공산독재의 가혹한 채찍 밑에서 인간의 온갖 권리를 박탈 당한 채 자유와 구원만을 바라며 암흑의 절망 속에서 울부짖고 있습니다.…" 4ㆍ19정신의 구현은 압제 속 북한인민을 구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가르친 '사실'은 그러므로 크게 틀리지 않았다. 북한도 그때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남쪽에선 아무도 뿔 달린 도깨비 그림을 그리지 않지만 요즘도 사진 속 북한거리엔 우리와 미국을 괴뢰나 승냥이로 그린 포스터들이 여전히 나붙어 있다.

달라진 것은 우리의 교육과 인식이다. 지금은 어느 교과서도, 선생님도 북한을 적대하거나 싸워 제압할 상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언젠가는 끌어안아야 할 동포인 데다, 무조건적 적대감은 현실적으로도 득 될 것이 없다는 점에서 옳은 변화다.

문제는 북한체제에 대한 사실의 외면과 왜곡이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성행했던 주사파 놀음이 계기가 됐다. 민주화를 부르짖으면서 북의 극단적 독재체제를 대안처럼 떠받들었던 것은 기막힌 모순이었다. 이 반지성적 유산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슬그머니 민주화운동 경력으로 분칠되고 뭉뚱그려졌다.

이후 학문적 방법이라고 할 것도 없는 내재적 접근법 따위를 사회과학의 성취인 양 내세우는 학자들이 이름을 얻고, 북한체제를 상대적 우위에 놓는 교육을 진보적 통일교육으로 착각하는 교사들이 생겨났다. 북한체제를 비판하면 "우리도 박정희, 전두환 땐 더 했어"라고 반박하는 이들은 도처에 넘쳐난다. 단언컨대 가장 심했던 권위주의정권조차 북한체제에 비견할 건 결코 아니었다.

6ㆍ25전쟁 60년이 된 지난 달, 진보연대 상임고문이라는 한상렬 목사가 북한에 들어갔다. 천안함에 이르기까지 60년간 일방적으로 군사도발과 테러를 자행해온 최악의 반인권적 통제국가 안에서 그는 "이명박 정부가 한반도에 전쟁을 몰아오고 있다"고 비난하고 남한의 반평화, 반민주를 맹렬하게 규탄했다.

허구한 날 관영매체를 통해 우리에게 거의 쌍욕을 해대는 그들 앞에서 "(한국정부는) 북한체제를 모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급기야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이명박식 거짓말의 결정판"이라며 "이명박이야말로 천안함 희생자를 낸 살인원흉"이라고까지 말했단다. 북한매체의 전언인 만큼 정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기를 바랄 뿐이다.

진보가치와 대립되는 북 체제

그의 '절절한' 진정성을 추켜세우는 반응들이 이미 일부 진보진영에서 나오고 있다. 귀국 후 사법절차가 시작되면 아마 대부분의 진보진영이 그를 감싸고 나설 것이다. 엄연한 팩트(Fact)를 도외시한 이 무지와 비겁, 몰지성이 우리사회에 분명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이 딱한 것이다.

진보의 이상은 민주, 평화, 인권, 평등, 정의 같은 것이다. 북한체제와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가치들이다. 그러니 한 목사를 옹호하는 진보단체, 정당들은 제발 이름과 강령에서 진보라는 말을 거두기 바란다. 진보의 아름다운 가치를 그런 식으로 모독해선 안 된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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