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를 낼 의지가 없다. 이기기보다 지지 않으려는 게 목표다. 이런 축구를 '안티 풋볼'이라고 한다. 재미없는 경기로 사람들이 축구에 등 돌리게 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파라과이도 지루한 경기로 안티 풋볼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월드컵 기간 동안 SBS와 대기업들의 행보도 안티 풋볼에 가깝다면 지나친 것일까. SBS는 월드컵을 독점 중계했고, 광고 시간은 엄청난 광고료를 낸 몇몇 대기업들이 차지했다. 하지만 광고는 '응원' '함성' '대한민국' 같은 구호들만 반복됐고, SBS는 독점 중계 외에 내세울 만한 콘텐츠를 만들지 못했다.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한국과 우루과이의 16강전에서도 몇 시간 동안 가수들의 공연과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치는 시민들의 인터뷰, 한국의 경기 하이라이트만을 반복했다. SBS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은 월드컵 특집 예능프로그램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 자리 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대중은 응원을 넘어 호감이 가는 선수들에게 각종 별명과 캐릭터를 부여했고, 김흥국과 최화정 같은 연예인들은 대표팀의 16강 진출과 함께 콧수염을 깎거나 비키니를 입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대중은 이미 월드컵을 즐기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수준인데, SBS와 대기업은 과거의 구호를 반복하는 데 급급했다. 변화하는 흐름을 반영하는 대신 검증된 흥행 요소에만 매달린 결과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SBS가 차범근 해설위원을 기용한 것이다. 그는 일본과 파라과이의 경기 중 "양쪽 팀 모두 자기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다"며 직접적으로 비판해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한편, 경기장 바깥에서는 마이크로 블로깅 서비스인 미투데이를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사람들은 아들인 차두리 선수의 근황부터 자신이 MBC 예능프로그램 '황금어장'의 인기 코너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지 않는 이유까지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에게 뜨거운 호응을 보냈다. 차범근은 월드컵에서 더 빠르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놀거리를 원했던 대중의 기대에 부응했고, 결과적으로 아들 차두리와 함께 이번 월드컵의 아이콘적인 존재가 됐다.
SBS나 대기업이, 차범근이 대중에게 무엇을 어떻게 전달하는지 참고만 했어도 월드컵이 훨씬 더 재미있어지지 않았을까. 경기 이외의 시간에 열심히 응원하자는 광고와 경기 하이라이트만 반복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이 어디 있는가. 세계 축구의 흐름은 끊임없이 바뀐다. 관중의 눈도 달라진다. 그런데 아직까지 전술이 "대한민국! 짝짝짝짝짝!"밖에 없다면 그건 '안티 월드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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