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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남몽' 펴낸 황석영/ 강남 형성사 통해 '천민자본주의 욕망'을 파헤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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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강남몽' 펴낸 황석영/ 강남 형성사 통해 '천민자본주의 욕망'을 파헤쳐

입력
2010.06.30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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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 역사의 그늘과 상처를 다루면서 오늘날 우리 삶과 욕망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됐는가를 뒤돌아보고자 쓴 소설입니다. 사회든 개인이든 과거에 덮어두고 지나쳤던 상처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현재를 긍정하며 달려나가기만 한다면 파시즘 사회가 되기 쉽습니다."

소설가 황석영(67)씨가 장편 (창비 발행)을 발표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해방 이후 강남 개발의 이면을 들여다보며 한국 천민자본주의를 탄생시킨 불의한 욕망을 파헤친 소설이다. 그는 평소 "80년대 말부터 구상해온 필생의 소설"로 '강남 형성사'와 '철도원 3대 가족사'를 꼽곤 했는데, 의 출간으로 그 중 하나를 완성한 셈이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8개월 동안 인터넷에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황씨는 재작년 출간한 장편 을 쓸 때도 인터넷 연재를 활용했다.

책 출간에 맞춰 3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황씨는 "30년 전만 해도 강남에 전화는커녕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음을 떠올린다면 한국 근대화의 속도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며 "(강남 형성사는) 열 권짜리 대하소설 감이지만 이를 한 권 분량으로 압축하기 위해 민속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의 형식을 빌려오는 새로운 실험을 했다"고 말했다.

모두 5장으로 이뤄진 은 화류계에서 출세한 여성, 정치군인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건설 재벌, 부동산 투기꾼, 조직폭력배, 광주대단지 사건의 당사자였던 도시 하층민의 딸 등 강남의 어두운 이면사를 체화한 다섯 사람을 각각 주인공으로 삼아 서로 얼키고 설킨 그들의 인생 역정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작가의 말대로 각 인형에 대표성을 부여하면서 그것들의 대사와 몸짓에 압축된 메시지를 담는 꼭두각시놀음의 형식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황씨는 과장, 해학 같은 인형극의 유희적 요소까지 빌려오지는 않았다. 그는 "해방 이후 한국 역사가 지닌 무게감과 선악을 명확히 가를 수 없는 복합성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작가가 "내용의 80%가 팩트(사실)인 다큐 소설"이라고 말하듯이 이번 소설은 황씨가 신문이나 여타 사료를 통해 얻은 사실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서술됐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정희 등 실명을 그대로 쓴 역사적 인물은 물론 그렇지 않은 인물들도 소설을 읽다보면 누군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황씨는 "어떤 정치적 입장을 배제한 채 사실에 충실하게 썼는데도 매우 불온한 소설이 됐다"며 "모든 사실에는 (이야기로서의) 힘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은 황씨의 뛰어난 이야기 솜씨와 사료 취재에 들인 공이 잘 어우러진 작품이다. 강남이 버려진 땅에서 부의 중심지로 급변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강남 신화'가 정사로, 또 야사로 널리 유포된 터라 이 소설이 강남 형성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해석을 담고 있다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인간의 욕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강남판 욕망의 사회학'을 설득력 있게 펼쳐보인 황씨의 작가적 역량은 여전하다.

황씨는 "방대한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형식을 발견했다는 것이 이번 작품의 수확"이라며 "다음 소설은 외국의 벽지에 틀어박혀 두 달쯤 집중적으로 집필해서 완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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