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싼 값에 대필(代筆)해 드려요. 최근엔 학생들이 대입 입학사정관제 대비용으로 많이 만들고 있지요."
계간 시 문예지를 발간하는 서울 A출판사는 최근 100만~500만원을 내면 150페이지 짜리 대필 시집을 만들어주는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200만원이면 500부, 500만원이면 3,000부를 각각 찍어준다. 이 중 일부는 각 대학의 도서관 등에도 보내고 대형 서점엔 일정기간 진열도 해준다.
이 출판사 관계자는 "최근 대필 시집이 인기라 2개월 전에는 주문해야 출간이 된다"며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중고생들의 참여가 높고, 특히 2학기 수시모집을 앞두고 있어 주문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이렇게 출간된 시집 중 일부는 계간 문예지에 게재해 등단도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실제 이 출판사를 통해 출간을 했던 서울 B고생은 등단의 기회를 가진 것으로 확인됐다.
시인으로 정식 등단을 하려면 신문사 주최 신춘문예 등에서 입상하거나 월간지 계간지 등 문예지에 신인으로 인정받아 글을 게재해야 하지만 이처럼 자비로 출간한 대필 시집이 등단의 통로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출판사는 특히 입학사정관제 대비 대필 시집을 버젓이 내면서 중고생 상대의 청소년문학상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당선자에게 상금은 없고 "입학사정관제 자료로 필요한 만큼 책을 주문하라"는 안내문이 전달된다. 일종의 상술인 셈이다. 당선된 학생들은"입학사정관 전형 요소로 활용된다"는 말에 솔깃해 최소 50~100부 정도를 구매하는 게 보통이다.
현재 전국에 수십개의 문예지 발행 출판사가 난립하고 있지만 공신력이 있는 몇 개를 제외하곤 대부분 영세해 운영이 어려운 실정이다. 한 문학계 인사는"영세한 문예지에서 신인상 공모를 하는 경우 1차 당선자를 일단 뽑은 뒤 심사료로 수백만원을 내면 등단시켜주겠다고 협상을 하거나, 문예지 일정 부수를 판매하도록 강매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전했다. 이 인사는 "대필 시집을 통해 등단을 하면 입시에서 큰 부가점수를 얻을 것이란 학생 학부모들의 기대감과 영세한 문예지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일종의'등단'장사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대학 측이 이런 분위기를 알고 있지만 식별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김경범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연구교수는"시집 출판이나 등단에 있어 대필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학사정관들도 알고 있지만 가려낼 방법이 없다"면서도 "하지만 면접을 통해 대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일부 추정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필 등 엉터리 자료제출은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철현기자 kara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