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동안 최고의 '코니'요? 바로 저죠."
댄서들의 오디션 과정을 다룬 뮤지컬 '코러스라인'에는 코니라는 동양인 댄서가 등장한다. "키 작은 아시아인은 '미스 사이공'밖에 출연할 수 없었다"는 가슴 절절한 사연을 늘어놓는 이 역할의 실제 모델은 바로 이 작품을 35년 동안 연출해온 바욕 리(64). 1975년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코니 등장 부분의 대본을 직접 쓰고 무대에 섰던 그는 브로드웨이 유일의 동양인 여자 연출가다.
29일 '코러스라인'이 공연 중인 서울 코엑스 아티움 대기실에서 그를 만났다. 부산하게 화장을 하던 그는 "'코러스라인' 자체가 내 인생이다. 나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일깨워줬고, 매 회 공연이 내 자식 같다"고 말했다. "찢어진 화장품 가방에 깨진 파우더 팩트, 이게 제 본 모습이에요. 하지만 '코러스라인'만큼은 완벽하게 만들죠. 세계 어디서든 같은 메시지와 완벽한 연기, 노래, 춤을 추구해요."
중국계 미국인인 그는 다섯 살 때 '왕과 나'에서 잉야월락 공주 역으로 처음 무대에 섰다. 그러나 배우가 되는 길은 멀고 험난했다. 외모 때문에 오디션에서부터 번번이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오랜 친구였던 마이클 베넷('코러스라인'의 초기 연출자이자 프로듀서)이 작품을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시 브로드웨이는 창작의 씨가 말랐었죠. 50~60명의 댄서가 우르르 나오는 대규모 작품이 주를 이뤘어요. 20명 안팎의 배우가 노래, 춤, 연기를 모두 한 것은 '코러스라인'이 처음이었어요." 마이클 베넷은 댄서들을 모아놓고 '더 이상 설 무대가 없다면 어떡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뒤 답변을 녹음기에 담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배우들의 실화에서 '코러스라인'이 탄생한 것이다.
3년 동안 코니를 연기하던 바욕 리는 마이클에게서 다시 연출 제의를 받는다. "새 삶을 발견했어요. 저의 불리한 점 때문에 더 공격적으로, 더 큰 신념을 갖고 연출했죠." 이후 그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여러 뮤지컬과 오페라를 연출하면서 입지를 다졌다.
그는 "아직도 동양인은 브로드웨이에서 '왕과 나' '플라워 드럼송' '미스 사이공' '사우스 퍼시픽' 네 작품에만 출연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연출하는 작품만은 실력있는 동양인을 엄선, 기용하고 있다고 했다. "뉴욕시티오페라하우스에서 '신데렐라'를 공연하면서 8명의 동양 배우와 스태프를 영입했는데, 결과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어요. 인식을 바꿔나가는 중이죠."
지난해부터 그는 동양인 배우를 교육, 지원하는 비영리 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인도, 일본, 베트남 등의 배우들을 모아 공연할 거예요. 한국의 '코러스라인'은 모두 한국 배우가 출연하잖아요? 동양인이 다른 역할 못하란 법 없잖아요." 공연은 8월 22일까지. 1544-6399
글ㆍ사진=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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