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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밀실협상의 추억

입력
2010.06.29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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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이맘때 거리를 뜨겁게 달군 촛불시위를 촉발한 도화선은 한미 쇠고기 협상문제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미국 의회 비준을 앞당기기 위한 양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30개월 미만으로 묶여 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연령제한을 해제한 것이 화근이었다.

공론화 비껴 간 전작권 협상

문제는 협상안이 사전에 아무런 국내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득과정도 없이 철저하게 밀실에서 이뤄졌다는 데 있었다.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협상은 없다고 버티던 정부는 결국 여론에 굴복, 미국에 추가협상을 요청했고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는 들여오지 않기로 합의함으로써 겨우 한숨을 돌렸다.

잊혀져 가던 밀실협상의 좋지 않은 기억이 한미 정상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연기 합의로 되살아나고 있다. 상대가 미국이고 FTA와 쇠고기 문제가 걸려 있다는 것 등 과거 쇠고기 협상과 이번 전작권 협상은 비슷한 모양새를 갖췄다. 무엇보다 두 협상을 닮은 꼴로 만드는 핵심은 밀실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양국 정부는 전작권 환수 연기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2012년 전환 일정에 변함이 없다"는 앵무새 같은 대답을 해왔다. 하지만 양국이 시인했듯이 무려 1년 넘게 감쪽같이 국민들을 속이고 밀실에서 흥정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전작권은 국가공동체의 안보 유지를 위한 큰 틀의 원칙을 정하는 문제로, 전문가와 시민의 치열한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다. 남북한의 정치적, 군사적 관계만이 아니라 한국의 대외관계 전반과 국방개혁 방향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이 터무니없지 않은 것이 전작권 문제가 처음 불거진 1987년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전작권 환수 공약 때와 94년 평시작전통제권 환수, 2007년 전작권 환수 합의 때는 모두 공론의 장에서 활발한 논의가 진행됐다.

전작권 연기 협상 내용이 공개될 경우 한국에서 반미시위가 일어날 것을 꺼린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국민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면서까지 협상을 관철시킨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객관적인 안보 판단보다는 보수층의 요구에 휩쓸린 정치 논리가 앞선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더 걱정되는 것은 밀실협상 과정에서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는 대가로 미국측에 일방적 퍼주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다. 정부 당국자는 전작권 환수 연기에 따른 추가비용이 없다고 공언했지만 국가 간에 주고받는 게 기본바탕인 외교협상에서 아무것도 준 게 없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은 없다.

우리 정부가 매달리다시피 해 환수 연기를 요청한 만큼 미국이 마지못해 들어주면서 요구조건을 내걸 것은 누가 봐도 당연해 보인다. 협상 당사자로 참여했던 김태영 국방장관도 "전작권 전환은 국가 대 국가 간의 약속으로,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은 우리가 상당히 많은 것을 내놓지 않고는 불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양국 정상이 전작권 연기 합의와 동시에 한미FTA 논의 재개를 선언한 것이 영 개운치 않다. 그 동안 미국 의회에서 쇠고기 수입대상 월령 확대와 자동차 시장 추가 개방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설혹 당장 퍼준 것은 없다는 말을 믿는다 해도 앞으로 실무협상 과정에서 미국이 요구를 관철하는 지렛대로 전작권을 활용할 가능성은 다분하다.

협상과정 검증 국회가 나서야

그렇기 때문에라도 국회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전작권과 FTA 문제점을 전면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정부와 여당도 떳떳하다면 논의를 피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와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방선거에서 표출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국민과의 소통 강화에 역점을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전작권과 FTA 협상은 그 발언의 진정성을 가리는 시금석이다.

이충재 편집국 부국장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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