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해 보였다. 드라마 '로드 넘버 원'의 부진한 시청률을 애써 감추려 하지 않는 말투도 가든했다. 간담회가 열린 카페의 매킨토시 앰프는 느꺼운 음색의 재즈를 뿜어냈는데, 소지섭의 목소리가 두어 단 높은 음계로 재즈 선율을 덮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쉽게 못 사귀는 편이었어요. 여태껏 일하면서 '동생'을 만들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로드 넘버 원'을 하면서 동생이 많이 생겼습니다. 2중대 야구단도 만들기로 했어요(웃음)."
잘생긴 윤곽보다 깊숙한 그늘을 여전히 그의 매력으로 인식한다면 이런 말투가 낯설 듯도 하다. 과묵하고 내성적인, 가슴 속에 내연기관을 품고 있을 것 같은 반항아 소지섭은 그러나 이미 데뷔 15년을 넘긴 배우다. 이번 드라마에는 연기자로서뿐만 아니라 제작지원자로도 이름을 올렸다.
"이제 작품을 하게 될 때면 뭔가 '내 것'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요. 들어갔다 빠져나오면 끝이 아니라 작품이 내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고 할까요."
소지섭이 이 드라마에서 맡은 역할은 사선을 넘나드는 전쟁터의 2중대장 이장우. 강렬하고 직선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캐릭터다. 전쟁 영웅이라기보다 한 여자를 미친 듯이 사랑하는 열정의 화신이다. 촬영이 한창이던 지난해 말 그는 각종 시상식에 군복 차림으로 참석했는데, 이장우 캐릭터에 그만큼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옷 갈아 입을 시간도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근데 그러고 싶더라고요. 이장우가 그만큼 매력적이었어요. 대상이 여자일 수도 있고, 어머니일 수도 있고, 나라일 수도 있고, 나도 목숨을 바쳐 처절히 무언가를 사랑해보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내 의지만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 지더라고요."
같이 드라마에 참여한 동료들에 대해 이런저런 평을 할 정도로 여유로워졌지만, 그는 여전히 배우로서 가장 원초적인 갈급을 지니고 있었다.
"'로드 넘버 원'이 배우로서의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아요. 그 동안 땅만 보고 연기했다면 하늘을 보고 연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하지만 고민은 여전합니다. 딴 건 몰라도 제 연기에 관한 얘기에는 여전히 민감해요. 한번은 최민수 선배님한테 물어봤어요. 심각하게, '연기가 뭐냐'고. 근데 그러시더라고요, '99퍼센트의 거짓을 덮을 수 있는 1퍼센트의 진실'이라고."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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