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경보음을 막고자 설정된 딜레이 타임(delay time) 2분의 공백. 이 사이 3억원대의 귀금속 도난사고가 발생했다면 경비업체에게 책임이 있을까. 법원은 사실상 막기 힘든 범죄여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금은방을 운영하던 A씨는 10년간 자체경보기를 사용하다가 향상된 보안을 위해 2006년 B경비업체와 계약을 맺었다. 셔터와 출입문 사이에는 셔터감지기, 출입문에는 자석감지기, 금은방 내부에는 열선감지기 및 오디오감지기, 비상벨까지 철통 보안장치를 구비했다. 게다가 사고 발생시 귀책사유에 따라 책임까지 분담한다고 계약했다.
그러나 경보기 설치 2주 만에 2억9,000여만원 상당의 귀금속 도난사고가 발생했다. 출입자를 식별하는 카드리더기가 출입문 안쪽에 설치돼 있어 A씨가 셔터를 열고 들어가서 카드리더기에 입력할 때까지 경보음 발생을 막고자 설정된 '딜레이 타임 2분'이 화근이 된 것. 업체직원은 경보음 발생 후 3분26초, 경찰은 현장에 출동한 B사 직원의 지원요청이 있은 후 3분만에 도착했지만 이미 도둑은 사라진 뒤였다.
조사결과 도둑이 셔터를 열고 물건을 훔치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분10초였다. 경찰은 번개처럼 이뤄진 범행을 두고 자작극이 아닌가 하고 수사했지만 A씨의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이 사건을 미제로 처리했다. 이에 A씨는 "잘못된 경비계획에 의해 도난사고가 발생한 만큼 배상하라"며 B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민사5부(부장 황한식)는 원심과 같이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재판부는 "딜레이 타임을 0초, 20초 내지 30초로 설정했더라도 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성공할 수 없었다고 단언하기 어렵고, B사 직원이 먼저 경찰에 지원요청을 했더라도 도난사고는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B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권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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