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을 기다린 무대였지만 너무나 허무했다.
남아공월드컵을 끝으로 월드컵과 작별하는 이동국(31ㆍ전북)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동국은 27일(한국시간) 끝난 2010 남아공월드컵 우루과이와 16강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고개를 떨궜다. 허리춤에 손을 갖다 댄 채 한 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음 속으로 울었다.
이동국에게 이번 월드컵이 갖는 의미는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5,000만 국민들이 이동국의 월드컵 출전 여부에 관심을 쏟았고, 취재진들도 연일 포커스를 맞췄다.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 이동국은 한국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줄곧 활약했다. 하지만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탈락하더니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는 부상으로 월드컵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대로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는 '비운의 스타'가 될 것인가가 팬들의 관심사였다. 2009년 K리그에서의 맹활약을 발판으로 대표팀에 다시 호출된 이동국은 최종 엔트리가 발표되기 전까지도 가슴을 졸여야 했다. 월드컵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허벅지 부상 진단을 받았기 때문. 그리스전까지 정상적인 컨디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이 내려졌기에 허정무 감독으로선 이동국 발탁에 신중할 수 밖에 없었다. 허 감독의 고심 끝에 이동국은 결국 '허정무호'에 승선했고, 월드컵이 개막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이동국은 박주영(AS모나코)과 염기훈(수원)에게 밀려 벤치에 머물렀다. 아르헨티나와 조별리그 2차전에서 후반 36분에 교체 투입돼 10분간 그라운드를 누빈 게 다였다. 그리고 우루과이와 16강전에서 마침내 기회가 왔다. 후반 15분 김재성(포항)을 대신해 투입된 이동국은 최전방 공격수로 나섰다. 부지런히 움직이며 기회를 엿보던 이동국은 후반 41분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골키퍼와 1대1로 맞선 절호의 득점 찬스. 이동국의 오른 발을 떠난 슛은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고, 살짝 뒤로 흐르는 데 그쳤다. 2-2를 만드는 동점골을 성공시켰다면 그야말로 영웅이 될 수 있는 순간을 놓친 것이다.
힘 없이 인터뷰장으로 걸어 나오던 이동국은 취재진이 아쉬움을 표현하자 "마지막에 찾아온 득점 장면을 수 없이 상상해왔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12년을 기다렸는데 어땠는가'라는 질문에도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허무하게 끝났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게 아니다"라는 무거운 탄식을 남기며 그렇게 쓸쓸히 돌아섰다.
엘리자베스(남아공)=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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