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합리적이지 않다"
조지 소로스의 투자는 상처 난 곳을 후벼 파는 하이에나 같은 방식 때문에 비난 받지만, 시장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는 칼 포퍼의 '열린 사회' 개념에서 '재귀성 이론(The Theory of Reflexivity)'이란 투자 철학을 이끌어 냈다. 포퍼는 "인류사회는 인간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에만 진보하며, 궁극적인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재귀성 이론은 따라서 시장이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주가 등이 실제 가치를 반영한다는 '합리 가설'을 전면 부인한다. 오히려 시장은 편견과 오류로 왜곡돼 있는 게 보통이며, 그러한 불균형은 투자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투자자 역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쪽으로 자기실현을 거듭해가며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주식시장에서 주가가 상승하다 보면 긍정적인 편견에 의해 상승 추세가 강화되고, 주가가 떨어지다 보면 부정적 편견이 강해져 하락을 더 부채질하는 현상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게 시장에 불균형이 포착되면 적극 활용하는 게 그의 투자 기법이다.
검은 수요일은 영국 정부가 자초?
이같은 논리에 따르면 1992년의 '검은 수요일'도 사실 영국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당시 독일은 통독 이후 구 동독에 대한 지원 때문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2년간 10차례나 올렸다. 마르크화 상승이 예견되는 상황이었다. 반면 영국은 실업률 증가와 최악의 불경기를 맞아 파운드화 하락이 예상되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2년 전 보수당 정부가 사실상 고정환율제인 유럽환율제도(ERM)에 가입했기 때문에 파운드화는 충분히 평가절하될 수 없었다. 소로스는 ERM에 내재한 이 같은 불합리를 꿰뚫어보고 보유 외환이 400억달러 내외에 불과했던 영국을 타깃으로 공격을 시작했던 것이다.
검은 수요일 이후 보수당 정부는 변동환율제를 도입해 환율을 시장에 맡긴 데 이어 고금리정책도 포기했다. 금리가 내려가고 파운드화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비로소 영국 경제는 회복국면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97년 들어선 노동당 정부는 중앙은행을 재무부에서 독립시켜 통화정책에 대한 개입을 차단했다. 영국 정부가 단일 통화인 유로화 채택을 거부한 것도 검은 수요일이 준 교훈 때문이다. 결국 검은 수요일은 영란은행에 치욕을 안기고 영국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혔지만, 정부의 잘못된 정책 판단을 수정하고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실패에 굴하지 않는 투자
소로스가 투자할 때마다 성공을 거뒀던 것은 아니었다. 대규모 손실을 본 적도 많았다. 그러나 그는 외환시장, 주식시장, 채권시장을 넘나들며 공격적이고 다양한 투자를 함으로써 더 큰 수익을 얻어 실패를 만회했다. 기회가 포착되면 엄청난 규모의 대출을 통해 공격적인 레버리지 투자를 감행했다.
소로스는 94년 미국과 일본의 무역협상이 타결되면 엔화가 결국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엔화를 집중적으로 매도하는 투기에 나섰다. 그러나 엔화는 95년 초 달러당 79엔이라는 사상 최고치까지 치솟았고 그는 6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그럼에도 그의 펀드는 '턴 어라운드'(실적 회복) 기업에 대한 주식투자 덕에 그 해 39%라는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98년 8월에는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러시아 주식에 많이 투자했던 소로스는 20억달러에 이르는 투자손실을 입었다. 곧 이어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LTCM) 사태가 터졌다. 그러나 이 해에도 소로스의 펀드는 17%의 수익률을 올렸다.
99~2000년까지 이어진 '닷컴 버블' 당시에는 닷컴주를 공매도하다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이에 따라 은퇴설도 나돌았지만 재기했다. 2007~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금융시장을 덮치자 공매도를 통해 대규모 수익을 올렸고, 올해는 유로화 투매의 배후로 몰리며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섰다.
소로스의 제자이자 소로스 펀드를 장기간 운용했던 스탠리 드러켄밀러는 소로스가 손실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거액의 손실에도 전혀 괴로워하지 않는다고 평한 적 있다. '한 거래에서 실패하면 다른 거래서 성공해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다음주는 블룸버그 통신 설립자인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을 소개합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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