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월드컵 독일 대표팀의 수비수 제롬 보아텡(21)은 요하힘 뢰프 감독으로부터 24일 새벽(한국시간)에 열린 가나와의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 선발 출장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호주, 세르비아 전에서 내내 벤치를 지켰던 그에겐 설레이는 월드컵 데뷔 무대였다. 동시에 지거나 비겼다간 조국이 16강 탈락의 수모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장한 기분이 절로 드는 경기였다.
제롬을 비장하게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그의 형 케빈프린스 보아텡(23)이 상대팀 가나의 주전 미드필더를 맡고 있기 때문. 이들은 월드컵 80년사 최초로 그라운드에서 적으로 만난 형제로 기록될 것이었다.
가나 출신의 독일 이민자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독일인 어머니를 두고 있는 이복 형제. 이들의 작은 아버지는 전직 가나 축구 대표선수이고, 케빈프린스의 외할아버지는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서독에 첫 우승컵을 안겼던 전설의 스트라이커 헬무트 란이다. 축구 명가의 유전자가 각인돼 있는 형제는 나란히 독일 청소년 대표팀에 발탁되며 두각을 보였다.
사이 좋던 두 형제의 운명은 지난해 형 케빈프린스가 가나 월드컵 대표팀에 들어가면서 갈리기 시작했다. 케빈프린스는 유럽국제연맹(UEFA) 21세 이하 독일 대표팀에 선발됐다가 감독과 선수들간 심한 갈등을 겪은 뒤 아버지 나라의 대표팀에 투신했다. 게다가 포츠머스 소속인 케빈프린스가 지난달 첼시와의 잉글랜드 FA컵 결승에서 독일 월드컵팀 주장인 상대팀 미드필더 미하엘 발라크에게 발목 부상을 입혀 발라크의 월드컵 출전을 좌절시킨 일을 놓고 동생 제롬이 형에 대한 원망을 표출, 형제는 서로 말도 하지 않을 만큼 사이가 틀어졌다.
24일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스타디움. 굳은 표정으로 악수를 나눈 형제는 왼쪽 미드필더(케빈프린스)와 오른쪽 풀백(제롬)으로 마주섰다. 서로 맞부딪쳐야 할 포지션이었지만 막상 경기 중엔 두 사람이 공을 겨룰 일은 거의 없었다. 두 사람은 팀의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형은 풀타임을 뛰면서 52번의 패스를 받아 38차례 동료에게 정확히 연결했고 두 차례 슛도 날렸다. 동생은 후반 28분 교체될 때까지 8㎞를 뛰면서 후반 16분 상대의 결정적 공격을 막아내는 활약을 펼쳤다.
경기 결과는 독일의 2-1 승이었지만, 가나 역시 조 2위를 차지하며 독일과 함께 나란히 16강에 진출했다. 본선 진출 6팀 중 5팀이 이미 탈락했거나 탈락 위기에 처한 아프리카 축구의 마지막 자존심을 살린 형과 세르비아에게 당한 패배를 만회하며 독일의 건재를 과시한 동생 모두 웃을 수 있는 결과였다.
두 형제는 다음 시즌부터 프리미어리그에서 자주 마주치게 됐다. 독일 함부르크SV에서 뛰던 동생 제롬이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했기 때문. 서로 몸을 부대끼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동안 두 사람의 형제애도 예전처럼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훈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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