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8부(부장 신일수)는 석면 함유 베이비파우더를 쓴 유아와 부모 130명이 "부모로서 아이에 대한 죄책감, 성장과정에서 발병할 질병에 대한 불안감을 배상하라"며 국가와 제조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1인당 위자료 70만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지만, 법원은 달리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미국과 일본 등에서는 석면규제 기준을 마련한 반면, 우리나라는 미흡한 점이 있다"며 국내 규제환경이 취약하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배상 책임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석면의 발암성 등 위험성을 인정하면서도 "장기간 노출되면 폐암 등이 발생할 수 있지만, 단기간 소량 노출될 경우 발병률이 낮다"며 "규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에 배상책임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베이비파우더에 한번 노출돼도 암을 일으킬 수 있다는 과장된 표현은 혼란을 야기할 수 있고, 영ㆍ유아들의 발병 가능성 증가여부도 과학적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국내에서 유사 소송이 없어 미국 연방대법원의 '석면노출 노동자 소송' 판례를 연구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파우더 사용자의 질병이 의학적 근거로 입증되지 않은 이상 '상당기간 흐른 후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으로 인한 불안감'에 대한 배상은 인정할 수 없다"며 제조사를 상대로 한 청구도 기각했다.
지난해 4월 석면 파우더의 위험성이 보도된 직후 식약청은 관련 제품을 전량 수거하고 교환 및 환불토록 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는 지난해 12월 위자료 70만원씩을 배상하라고 제조사에 책임을 물었지만, 석면 파우더 제조사 중 한 곳인 보령메디앙스가 이를 거부해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왔다.
강아름기자 sar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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