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이 메시아다"는 선언은, 한때 시대를 격동시켰던 외침이었으나 그 메아리가 없어진 지도 이제는 꽤 오래.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민중운동이 쇠퇴한 것에 맞춰 그 염원을 담았던 민중신학도 시들해진 까닭이다. 이 먼지 더께 쌓인 곳에서 다시 싹을 틔우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말한다. "민중신학의 통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지금 더욱 절실해졌다." '다시 민중신학이다'는 기치를 내건 것이다.
한국민중신학회는 지난 2년 간 회원들이 월례 세미나에서 발표한 12편의 논문을 모아 최근 (동연 발행)를 펴냈다. 학회장 권진관(58) 성공회대 조직신학 교수는 "'생명'이니 '평화'니 하는 새로운 걸로 하지, 왜 구닥다리를 아직 붙잡고 있냐는 말도 듣는다"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에도 이란 책을 내는 등 민중신학 부활에 팔을 걷고 있다.
구닥다리라는 시각은 둘째치고 사실 민중이란 말 자체가 다소 어색해진 상황이 아닌가. 국민이나 시민, 혹은 서민이란 말과 달리 '민중'은 역사의 물줄기를 변혁시키는 집합적 주체의 의미를 깔고 있는 단어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 사회에 그런 거대 변혁이나 그것을 가능케 하는 집단을 꿈꾸는 것은 철지난 혁명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
권 교수는 그러나 "경제적으로 성장했다고 하지만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노숙자, 청년 실업 등 사회적 약자의 삶은 더욱 열악해지고 있다"며 "현대 사회가 다양하게 분화되고 있지만, 개별 영역의 사회적 약자들을 묶는 상징적 담론으로서 '민중'만한 게 없다"고 강조했다. 거대한 혁명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로서의 민중' 담론은 여전히 유효하고 더욱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권 교수는 "과거의 민중신학이 다분히 정치적 변혁을 염두에 뒀다면, 새롭게 모색하는 민중신학은 생명과 평화를 강조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서울대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신학에 입문, 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에서 국내 민중신학의 창시자인 고 안병무(1922~1996) 박사, 서남동(1918~1984) 교수 등으로부터 신학을 배웠다. 그가 배운, 변치않는 민중신학의 전통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난의 경험에 주목하는 것. 그 뿌리는 바로 '예수님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했다'는 데 있다. 마태복음 25장 최후의 심판 이야기에서 예수는 '굶주린 자들, 목마른 자들, 이방인들, 헐벗은 자들, 병자들, 감옥에 갇힌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장 40절)고 말한다. 안병무 박사는 이를 통해 '예수의 고난'을 '민중의 고난'으로, '예수의 부활'을 '민중의 부활'로 이해했다.
권 교수는 "하나님이 민중, 즉 사회적 약자들 속에 함께 계신다는 것이 민중신학의 핵심"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그 속에서 진리를 찾고, 그들의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민중신학은 지금 우리 시대의 신학적 질문에 대해 가장 좋은 답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민중신학회는 오는 9월에 생명을 주제로 하는 대규모 민중신학대회 개최도 준비하고 있다.
글ㆍ사진=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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