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첫 골 터져라~."
시민 붉은악마들은 결코 잠들 수 없었다. 지구 반대편 남아공에서 뛰고 있는 태극전사를 응원하는 데는 너와 내가 따로 없었다. 22일 오후 10시부터 23일 오전 6시까지 장장 8시간에 걸친 밤샘응원을 통해 우리 국민들은 하나가 됐다.
평소 같으면 단잠에 빠져있을 새벽 3시30분. 2010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의 성패가 걸린 나이지리아전을 놓고 전국의 거리와 광장은 또다시 붉게 타올랐다.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시민들의 함성에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다.
22일 오후부터 서울 여의도 한강변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붉은 티셔츠 차림의 시민들은 무더위도 개의치 않고 저마다 태극기와 응원봉을 든 채 여의도 너른들판으로 모여들었다. 이 곳은 아르헨티나와의 2차전에서 10만여 명이 모여 새로운 거리응원의 성지(聖地)로 부상한 장소. 이날도 오후 11시가 넘으면서 넓은 광장이 시민들로 가득 찼다.
한국일보 서울시가 주관하고, SK텔레콤 아디다스가 주최하며, 자생한방병원(의료)과 청정원(식음)이 후원하는 '한국일보와 함께하는 여의도 All Night 거리응원 한마당, again 2002'에서 시민들은 대표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탄성과 감탄사를 토해냈다.
여의도 너른들판은 도심의 교통체증과 빌딩 숲의 답답함을 피해 강변의 시원함을 만끽하며 12번째 태극전사로 응원을 펼칠 수 있는 천혜의 장소. 3만8,000㎡(약 1만1,500평) 규모의 강변 잔디광장에 돗자리를 깔고 자리잡은 시민들은 500인치 초대형 LED전광판과 대형 무대를 응시하며 뜨거운 거리응원전을 펼쳤다. 22일 오후 7시부터 여의도 너른들판 한 편에 간이 텐트를 친 김성진(24•서울 서초구)씨는 "어차피 밤샘응원을 할 텐데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을 불러 함께 저녁도 먹고 공연도 볼 겸해 준비했다"고 즐거워했다.
경기시작 5시간 반 전인 22일 오후 10시부터 1부 공연이 시작됐다. 2009 미스코리아 진 김주리양의 진행으로 여성 4인조 밴드 '스토리셀러', 락밴드 '닥터코어911'와 '블루스키퍼' 등 실력파 인기밴드가 나와 열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여기에 천상의 기타리스트 박주원이 출연, 한강변을 낭만이 흐르는 수변 무대로 만들었다. 공연 중간에 화려한 폭죽과 불꽃 쇼는 한밤의 강변을 환하게 밝혔다. 막간에 개그맨 오정태와 함께하는 월드컵 퀴즈쇼와 즉석 댄스경연대회 등 다채로운 레크레이션이 이어져 폭소를 자아냈다.
특히 댄스경연대회에서 올해 미스 서울에 뽑힌 10명의 예비 미스코리아 후보들이 월드컵 군무를 선보여 강변을 핑크 빛으로 화사하게 물들였다. 또 '베스트커플을 찾아라'등 각종 경품 행사에서 뽑힌 입상자들에게는 커플 금반지를 비롯해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 로댕전 입장권(300매), 영화티켓(200장) 등 푸짐한 상품이 돌아갔다.
이날 여의도 너른들판에 세워진 대형 무대 옆에는 한국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대형 설치물이 나란히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왼쪽에는 초대형 트러스를 세워 가로 12m, 세로 9m 크기의 초대형 태극기가 걸렸고, 오른쪽에는 12일 그리스와의 1차전 때 박지성 선수가 그림 같은 쐐기골을 넣고 환호하는 대형 사진(9m X 9m)이 걸렸다. '이기러 왔다!'는 박지성의 멘트는 붉은악마들의 응원 결기를 자극했다. 초대형 태극기는 잔디광장에 온 수만여 명의 시민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파도타기 응원으로 이어지는 장관을 연출했다.
공연 중간 영국 맨체스터에서 촬영해온 박지성의 응원체조가 방영되자 시민들이 다같이 동작을 따라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날 응원무대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국민 락커 윤도현의 등장이었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특유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앞세워 '오~ 필승코리아''아리랑'등을 대히트 시키며 국내 거리응원전 문화를 새로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윤도현 밴드가 새벽 1시50분께 무대에 나와 '애국가''담배가게 아가씨'등을 열창하며 미니콘서트를 열자 시민들은 모두 일어나 막대풍선을 흔들며 환호했다. 붉은악마 머리띠를 두른 여성, 보디페인팅에 야광봉, 북, 나팔 등 다양한 응원아이템으로 무장한 시민들은 팔짝팔짝 뛰며 너른들판을 한껏 달궜다.
윤도현이 남아공 월드컵에서 모습을 드러내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그는 한국 대표팀이 17일 아르헨티나전서 완패하자 실망한 국민들에게 힘을 불어넣기 위해 이번 응원전에 참여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한강변의 시민들은 잠시도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한국팀의 찬스가 올 때마다 시민들은 함성과 함께 서로 얼싸안고 춤을 추면서 감격의 순간을 만끽했다. 부산 온천동에서 왔다는 이재성(29)씨는 "버스 타고 4시간30분 걸려 올라왔는데 서울광장은 너무 복잡하다고 해 여의도 한강변으로 오게 됐다"며 "인기가수와 미스코리아도 눈앞에서 보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승리를 기원하는 분위기를 체험하게 돼 밤을 새워도 아직 피곤한 줄 모르겠다"고 즐거워했다. 아이와 부인을 동반한 김창용(43)씨는 "아이에게 온 국민이 함께 응원하는 뜻깊은 현장을 보여주고 싶어 데리고 나왔다"며 "날씨까지 선선해 가족캠핑도 겸할 수 있어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간식 5,000명 분, 생수 3,000명 분이 무료 제공됐다. 시민들은 경기가 끝난 뒤 남은 쓰레기를 한쪽에 쌓아놓고 가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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