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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다 '사이공의 흰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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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기자의 경계의 즐거움] 극단 다 '사이공의 흰 옷'

입력
2010.06.22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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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다(Da)는 '사이공의 흰 옷'으로 또 다른 이데올로기 전쟁의 이면을 보여준다. 황석영의 , 박영한의 등 신뢰를 주는 베트남전 관련 텍스트로부터 길어올린 서사가 민첩한 소극장 무대어법 속에 어떻게 삼투됐을까. 월남 작가 응웬 반봉의 소설 을 주된 텍스트로 삼은 이 무대의 미덕은 객관성이다.

무대의 시선은 10대 소녀에게 주어진다. 시골 소녀 프엉은 사이공 고등학교에서 베트남의 역사와 현실에 눈뜨게 되고, 베트콩 조직에 들어간다. 무대는 학창시절에 이어 게릴라 훈련, 가혹한 투옥 생활 등 '투사 만들기'의 공식을 시청각적으로 풀어낸다.

베트콩 만들기의 현장을 연극적으로 재현하는 이 무대의 전반적 색조는 암흑이다. 헬기의 굉음과 작열하는 섬광을 배경으로 하는 전투 장면에서는 마치 경극처럼 검은 옷으로 온 몸을 감싼 배우들이 지그재그 동선으로 극장을 샅샅이 누빈다. 맨 앞에서 맨 뒤까지, 소극장 공간을 면밀히 활용하는 동작선 덕에 무대는 확장돼 보인다.

시작하자마자 한국군 매복조가 사주경계를 하며 가로질러 간다. 곧 이어 베트콩 수색조가 정숙 보행을 하며 총을 들고 객석의 코앞까지 걸어오지만 알아채기 힘들 정도다. 피아의 구분이 힘들었던 동족전쟁의 특수성이 그렇게 3차원 무대화한다. 정글과 토굴의 어둠은 전투 장면이나 프락치에 대한 폭력 대목에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상승 효과를 일으킨다. 칠흙같은 무대 공간 속에서 헬기의 굉음과 총포 소리는 협소한 소극장 무대를 커보이게 한다

흔히 베트남전을 다룬 영화가 그렇듯 당시를 재생하는 장치로 유행하던 팝송을 시종일관 배치하는 전략은 이 무대에서 도어스와 비틀스의 팝송으로 나타난다. 천장에 매달려 전기 고문을 당하고 널브러져 있는 여자 베트콩을 감싸는 것은 뜻밖에 비틀스의 '헤이 주드'다. 그 같은 감상주의적 시선은 무대의 한계다.

그 점은 동시에 한국이 베트남전에서 타자일 뿐이었다는 입장을 확인시킨다. 한국어, 베트남어, 영어 등으로 당시 외교 문건이 낭독되는 서사극적 수법을 통해 한국군은 '용병'이었다고 무대는 분명히 한다. 더플백을 메고 힘없이 돌아오는 한국군 병사의 어깨 너머로 포성과 함께 도어스의 허무주의적 노래 'The End' 소리도 발악적으로 커진다. 한국의 입장은 모호하게 남겨둔 채, 무대는 당사자의 시선에 충실할 때 진실은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다. 27일까지, 동숭무대.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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