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서 마주 앉아, 잘못 배달된 도시락처럼 말없이, 서로의 눈썹을 향하여 손가락을, 이마를, 흐트러져 뚜렷해지지 않는 그림자를, 나란히 놓아둔 채 흐르는
우리는 빗방울만큼 떨어져 있다 오른뺨에 왼손을 대고 싶어져 마음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둘이 앉아 있는 사정이 창문에 어려 있다 떠올라 가라앉는, 생전(生前)의 감정 이런 일은 헐거운 장갑 같아서 나는 사랑하고 당신은 말이 없다
더 갈 수 없는 오늘을 편하게 생각해 본 적 없다 손끝으로 당신을 둘러싼 것들만 더듬는다 말을 하기 직전의 입술은 다룰 줄 모르는 악기 같은 것 마주 앉은 당신에게 풀려나간, 돌아오지 않는 고요를 쥐여 주고 싶어서
불가능한 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당신이 뒤를 돌아볼 때까지 그 뒤를 뒤에서 볼 때까지
● 두 사람은 이제 헤어지기 직전인가 봐요. 내일이란 없는 사람들처럼 말없이 앉아 있네요. 하긴 사랑하면서 내일 어쩌구저쩌구 말하는 사람이 제일 꼴불견이긴 해요. 내일, 내일 그렇게 말하면 꼭 자기 일 얘기하는 것 같죠. 그건 그렇고, 몇 개의 도시락들이 떠오르네요. 북한산에서, 창경궁에서, 도시의 공원에서 둘이 마주 앉아 먹었던 한 낮의 도시락들. 눌린 김밥에서 삐져나온 시금치 같은 것들을 보면서 먹었던 도시락들. 그 맛이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아마 배가 고플 때 바로 먹었기 때문에 그렇겠지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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