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노의 교과서'라 불리는 발레 스타 이원국(42)은 아직은 좋은 안무가이기보다는 좋은 무용수였다. 지난 19일 이원국발레단이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발레 '말러 교향곡 5번'을 초연했다. 이원국 단장이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삶을 말러의 교향곡 5번 전 악장에 맞춰 안무한 작품이다. 이 단장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예술혼을 불태웠던 말러의 곡을 듣다 보니 공감하면서 빠져들게 됐다"고 안무 배경을 밝혔다.
이 작품은 말러의 불우한 삶 가운데서도 사랑이라는 테마에 집중했다. 말러가 연인 알마의 죽음으로 결별의 고통을 겪은 뒤 재회한다는 가상의 내용이다. 실제 알마는 말러의 아내이자 많은 예술가와 염문을 뿌린 팜므 파탈로, 말러보다 오래 살았다.
무대는 알마(최예원)의 장례식으로 열린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검은 옷을 입은 남녀 4쌍의 행렬. 그들이 하늘 높이 들고 가던 알마는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 채 내려와 처연하게 몸부림친다. 그녀가 입은 흰색 로맨틱 튀튀(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종 모양의 발레 의상)는 더욱 슬프고 애틋하다.
이어지는 2장은 작품의 정수라 할 만하다. 꿈 속에서 재회한 말러(이원국)와 알마의 파드되는 오로지 발레리나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알마가 공중에서 거의 내려오지 않을 정도로 고난도의 리프트 동작이 많은데, 이원국은 여느 젊은 발레리노보다 든든하게 파트너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확하고 힘있는 동작은 다른 무용수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무거운 점프는 아쉬웠다.
3장에서는 아버지의 반대로 죽음을 택한 알마의 사연이 공개되고, 4악장 '아다지에토'는 내세에서 재회한 듯 행복한 두 남녀의 파드되로 대미를 장식한다.
후배에게 무대를 물려주려는 이원국의 의도일 수도 있으나 안무 자체는 말러보다 알마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말러의 고통과 예술혼도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다. 그래선지 이날 알마를 연기한 최예원의 아름다운 몸과 풍부한 감정 표현은 단연 돋보였다. 숙명여대 무용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입단한 단원으로, 주목할 만한 무용수다. 반면 군무는 실수가 잦아 전체적으로 연습이 덜된 인상을 주었다.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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