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금융지주의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은행권의 대대적 지각변동을 가져올 우리금융지주 인수합병(M&A) 대전을 앞두고, 시장 일각에선 KB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의 한치 양보 없는 경쟁보다 오히려 신한금융지주의 침묵을 더 궁금해하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신한은 지난 몇 년간 굵직한 M&A에서 한번도 패한 적이 없는 이 방면의 절대 강자였다.
2002년 굿모닝증권을 시작으로, 2003년엔 조흥은행을 삼켰고 2007년에는 LG카드까지 사들이는 등 시장 판도를 뒤바꿀 대형 M&A마다 전승(全勝)가도를 달려온 곳이 바로 신한이었다.
하지만 정작 '사상 최대의 딜'이 될 우리금융 인수경쟁에서 신한은 완전히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 우리금융이 KB금융이나 하나금융로 넘어갈 경우, 자칫 규모 경쟁에서 밀릴 수 있는 형국인데도 신한은 전혀 움직이질 않고 있다.
불참의 속내는
신한은 우리금융 M&A 불참이유에 대해 "국내 은행 인수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고 했다. 신한측 고위관계자는 "이미 점포수가 1,000개를 넘고 고객수도 1,500만명을 웃도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은행을 인수해 몸집을 불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 내부 판단"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상황으로 볼 때 점포수가 일단 1,000개를 넘어서면 그 이상은 2,000개든 3,000개든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이 상황에서 자칫 무리하게 1+1전략을 취했다가는 2가 되기는커녕 1.5도 안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M&A 이후 조직 통합 작업에 쏟을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면, 추가 인수는 더욱 어렵다는 것이 신한측 생각이다. 실제 신한은 2003년 조흥은행을 인수했지만, 화학적 통합을 위해 무려 3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두 가족 경영'을 한 경험이 있다. 이와 관련, 신상훈 신한금융 사장(당시 신한은행장)은 "조흥은행 인수 후 조직이 자리를 잡는데 최소 6년의 시간이 필요했고 2007년 인수한 LG카드의 통합작업도 이제 겨우 마무리돼 가고 있다"며 "그 동안 보이지는 않았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자금 부담도 우리금융 M&A를 꺼리게 하는 요인이다. 사실 신한은 조흥은행과 LG카드를 인수하면서 상당한 금전적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조흥은행 인수 당시엔 2조5,500억원의 상환우선주를 발행했고, LG카드 인수 때는 2조9,300억원의 회사채와 3조7,500억원의 우선상환주를 발행한 바 있다.
신한측에 따르면 조흥은행 인수채무는 올 초에 모두 갚았지만, LG카드와 관련한 상환금은 여전히 3조원 이상이 남았다. 신한 관계자는 "우선상환주를 주식 추가발행을 통해 상환할 수 도 있겠지만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해 현금 상환하기로 했다"면서 "적어도 2014년까지는 다른 곳에 큰 돈을 투입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신한이 M&A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포화 상태의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좋은 매물을 사들여 '아시아 메가뱅크'를 실현하겠다는 게 신한의 꿈이다. 신한은행을 중심으로 일본과 인도, 베트남 등 해외시장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시장의 평가는
국내 은행 인수 대신 해외쪽에 관심을 두겠다는 신한의 전략에 대한 시장평가는 비교적 긍정적이었다. 박정현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현재 신한금융은 덩치가 적절할 뿐 아니라 은행 증권 보험 카드 등 사업 포트폴리오도 가장 이상적으로 짜여져 있다"면서 "길게 보면 미국에서 씨티은행보다 규모가 작아도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배 이상 되는 웰스파고같은 금융그룹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우 삼성증권 수석위원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엔 은행들이 무너지면서 싼 매물들이 쏟아져 나와 M&A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었지만 지금은 충분히 제값을 주고 사 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면서 "결코 인수자 우위의 환경이 아닌 만큼 신한 입장에서는 무리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장악할 메가뱅크가 정말로 현실화된다면, 신한의 경쟁력이 심각히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만약 메가뱅크가 탄생할 경우 그 시장 지배력과 영향력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메가뱅크가 선도적 금리인하 등으로 공격적 영업에 나선다면 신한금융도 따라갈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규모에서 오는 경쟁력은 떨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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