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제3의 길'을 표방한 간 나오토(菅直人) 새 정부의 경제정책을 자문하고 있는 오노 요시야스(小野善康ㆍ59ㆍ사진) 오사카(大阪)대 교수는 22일 "한국도 고용을 창출해 잉여노동력을 활용하는 분야를 생각해가지 않으면 일본처럼 장기불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2월부터 내각부참여를 맡아 사실상 총리의 '경제교사' 역할을 하는 오노 교수에게서 경제성장과 재정건전화를 함께 달성하려는 일본의 새 경제정책에 대해 들었다.
_간 총리는 일본경제 정체를 타파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고 있는 이유는.
"생산이 빈약해 상품, 서비스를 충분히 생산할 수 없었던 개발도상 단계에서 생산력은 충분하나 수요가 부족한 성숙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상품, 서비스가 충족되면 사람의 욕망은 돈으로 옮겨간다. 처음 주식투자나 부동산투기로 돈벌이를 노렸지만 그 때문에 버블이 생겨 주가, 지가는 신용을 잃고 폭락했다. 1,000조엔이니 2,000조엔이니 했던 자산가치가 소멸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지갑을 닫고 수요부족으로 실업이 발생해 디플레가 됐다. 그 때문에 사람들의 욕망이 돈으로 옮겨가 불안 때문에 소비를 억제해 수요부족이 계속되고 있다. 이것이 장기불황의 원인이다.
_이제까지 자민당 정권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런 상황에서는 잉여노동력을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데 그런 발상이 없었다. 대신 돈을 뿌리면 수요가 회복한다고 생각해 감세, 내실을 생각하지 않은 공공사업에 투자했지만 큰 효과 없이 국채만 늘었다. 이번에는 비효율이 불황의 원인이라고 착각해 생산 효율화를 추구했다. 정부의 낭비가 문제라며 공공사업을 축소했다. 고이즈미(小泉) 정권의 구조개혁이다. 하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력이 남는데 생산효율화를 추구하고 공공사업을 줄이면 실업이 늘어날 뿐이다. 그 때문에 디플레가 더 악화해 고용불안은 커지고 수요는 더 줄어 경기가 얼어붙는다. 지금까지는 사람이 남는데 더 사람을 줄이는 효율화였거나 재정규모만 따졌지 노동자원 유효활용이라는 원래 생각해야 할 부분을 잊고 있었다."
_간 총리가 내건 '강한 경제, 강한 재정, 강한 사회보장'은 어떤 구상인가.
"지금까지의 재정정책은 정부가 돈을 절약하는가 뿌리는가를 기준으로 정책을 생각했다. 하지만 돈을 뿌리든 절약하든 경제효과는 없다. 낭비성 공공사업을 시행해 임금을 지불해도, 실업자에게 실업수당을 지급해도 아무 도움을 주지 않고 돈만 준다는 점에서 경제효과는 똑같다. 그러니까 실업자로 만드는 거라면 도로를 만드는 쪽이 도로가 생기는만큼 더 좋은 것뿐이다. 게다가 돈을 주면 그만큼 세금을 거두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한편에서 돈을 건네면서 다른 편에서 돈을 거두는 것뿐이어서 수요에 대한 플러스 마이너스효과가 상쇄할 뿐 총수요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간 정부는 돈에서 눈을 돌려 노동자원의 활용이라는 시점에서 경제정책을 시행하려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증세분을 모두 환경, 간호 등 도움 될 분야의 고용창출에 써서 거기서 소득으로 민간에 지불한다. 민간이 증세로 낸 것을 모두 되돌려 주기 때문에 민간의 부담은 없고 소비가 줄어들지도 않는다. 그뿐 아니다. 이에 따라 간호, 환경서비스가 제공된다. 게다가 환경, 간호분야에서 신규고용이 창출되기 때문에 고용불안도 디플레갭(공급 초과)도 줄어든다. 이것이 소비를 자극해 새로운 소비확대를 낳아 고용이 더 늘고 경제가 확대한다. 그래서 소득세, 소비세 수입도 늘어나 재정도 건전화한다. 환경, 간호 서비스의 충실, 경제성장, 재정건전화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다."
_간 정부가 소비세 등의 증세에 적극적인 이유는.
"증세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고용을 창출해 노동자원을 활용한다는 점을 분명히 내세운 것이 중요하다. 증세는 그때 필요한 자원확보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목적은 앞서 말한 대로 증세분을 모두 소득으로 국민에게 되돌려주면 국민 부담 없이 환경, 간호서비스나 사회자본을 제공할 수 있다. 게다가 고용이 늘어 고용불안도 디플레도 해소돼 안심하고 소비를 늘리기 때문에 경제성장도 가능해지고 세수도 확대된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현 정권은 사회보장, 자녀수당도 현금급부가 아니라 현물지급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그러면 서비스나 상품을 만드는 분야에서 새로운 고용과 소득이 생겨나 경제성장으로도 이어진다."
_환경, 간호 등 분야에서 기대할만한 성장이 가능할까.
"성장전략이라면 금세 산업 발전을 떠올린다. 그래서 성장산업으로 충분히 기대할만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온다. 하지만 여기서 성장전략은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국민생활의 윤택함, 쾌적함을 높인다는 의미의 성장전략, 즉 수요측의 성장전략이다. 그 같은 분야로 지금까지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던 환경이?간호, 건강이나 생활로 이어지는 사회자본 등을 정부가 제언하고 있다. 이것들은 정부가 하지 않으면 기업이 하지 않기 때문에 산업으로 발달하지 않았다. 그 한편 실업으로 노동력은 남아 돈다. 그래서 정부가 그 분야에서 잉여노동력을 활용한다면 쾌적한 생활도 실현되고 경제도 확대한다.
애당초 산업으로 자립할 수 있는 성장분야는 기업이 벌써 투자하고 있다. 그런 분야는 정부가 민간기업보다 더 잘 알 수도 없다. 이런 성장전략 발상은 개발도상 단계의 중국, 인도에서 통할 발상이다. 개발도상 단계에서는 어떤 상품이든 원하므로 그게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성숙사회에서는 그런 상품은 벌써 충분하다. 그 때문에 어떻게 하면 생활이 쾌적하고 즐거워질 것인가를 국민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민이 지성을 발휘할 대목이다. 자신이 원하는 상품을 정치인에게 물어봐야 소용 없다."
_일본 정부의 신성장전략이 한국에 참고가 될까.
"충분히 참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인도는 아직 필요로 하는 상품이 많은 발전단계여서 생산효율을 향상하면 된다. 그 나라들은 주가 하락으로 일시 충격이 있더라도 잠재 수요의욕이 높기 때문에 성숙사회 같은 장기적 수요부족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충분히 성숙단계에 들어섰다고 보기 때문에 수요부족이 일어날 가능성이 충분하다. 그때 과거 개발도상 단계의 성공 체험에 빠져 일본의 구조개혁처럼 인원감축정책을 시행하면 수요부족이 더 확대해 일본처럼 장기불황화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또 케인지언처럼 돈을 뿌려도 동시에 같은 액수의 세금 부담이 있어 경기확대효과는 없다. 성숙단계의 경제는 시장에만 맡길 경우 거대한 생산능력을 충분히 살려나갈 수 없다. 그 때문에 국민이 지혜를 모아 무엇이 필요한지를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정치인은 이 의견을 참고해 증세를 하더라도 노동자원을 거기로 전환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실현하지 못하면 수요부족에 빠져 노동력이 남아 고용ㆍ사회불안, 디플레가 일어나 경제가 장기정체에 빠질 것이다."
● 약력
1951년 출생 1973년 도쿄공업대 졸 1979년 도쿄대학원 경제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1990년 오사카대 교수 2009년 오사카대 사회경제연구소장 2010년 내각부참여(총리자문역) 거시경제동학 전공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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