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시장을 테스트하는 것인지, 아니면 시장이 지레 호들갑을 떤 건지. 지난 주말 잔뜩 무르익었던 중국의 위안화 절상 기대감은 이내 실망감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위안화 절상을 하기는 하는 거냐" "도대체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게 뭐냐" 등 회의론이 대두된다. 중국 측의 의례적인 제스처에 시장이 너무 과민반응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위안화 절상이 이뤄진다고 해도, 당초 예상을 벗어나는 급격한 절상은 없을 거라는 얘기다.
곧바로 진화 나선 중국
토요일인 19일 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홈페이지를 통해 성명을 발표했다. "위안화 환율 형성 메커니즘을 한층 더 개혁해 위안화 시세의 유연성을 확대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고정환율제(페그제)를 채택해 온 중국이 2년 만에 관리변동환율제로 복귀하면서 위안화 절상에 시동을 걸 거라는 기대감이 팽배했다.
성명이 나온 지 채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20일 오후. 인민은행은 기자회견을 통해 "현재 외환시장 환경을 고려할 때 위안화 환율은 다른 주요 통화 대비 균형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선 위안화 환율의 급격한 변동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전날 성명 발표 이후 위안화의 급격한 절상 기대감을 스스로 진화하고 나선 것이다.
이어 21일 고시된 위안화 기준환율은 달러당 6.8275위안. 성명을 발표하기 전인 지난 주 금요일(18일)과 전혀 변동이 없었다.
확산되는 회의론
인민은행이 곧 바로 진화에 나서고, 위안화 기준환율에도 전혀 변동이 없자 시장에서는 실망감이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는 "인민은행의 후속 기자회견이 금융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며 "중국이 과연 약속을 이행하겠느냐는 회의감이 급격히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민은행의 당초 성명이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많다. 캐나다에서 26~27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선진국들의 예봉을 피하고자 하는 선언적인 수준에 불과한데도, 시장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을 했다는 것이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인민은행의 문서화된 공식 성명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보면 내용 면에서 새로울 것은 거의 없다"며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절상 압박을 피하기 위한 제스처 정도일 뿐"이라고 말했다.
중국 현지에서도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다. 관영 인민일보는 이날 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환율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반드시 위안화의 절상과 동일한 것이 아니다"고 보도했다.
점진적 소폭 절상론 우위
그렇다고 중국이 언제까지나 달러당 6.83위안 안팎에 환율을 사실상 고정시켜 놓을 수는 없는 노릇.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전방위적 절상 압력을 감안하면, 연내 일정 정도의 절상은 불가피하다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결국 이번 성명 역시 이런 관측을 뒷받침해주는 행보일 성격이 짙다. 환율 하루 변동폭을 0.5%로 그대로 묶어둔 것만 봐도, 급격한 절상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에 따라 연내 2~3% 정도 소폭의 점진적인 절상이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 박월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연구위원은 "2008년 7월 달러 페그제로 전환할 때도 중국측이 관리변동환율제를 포기한다고 언급한 적은 없다"며 "절상을 한다고 해도 2~3% 미미한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의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국제 애널리스트 14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을 한 결과, 달러에 대한 위안화 가치는 연말까지 1.9% 상승하는데 그칠 것으로 관측됐다.
우리 경제 영향은
위안화가 10% 절상될 때 우리 경제성장률이 0.28%포인트 높아지고 수출이 44억달러 늘어난다는 것이 LG경제연구원의 분석. 반면에 중국산 수입제품의 가격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물가는 0.24%포인트 높아질 걸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 수치는 위안화 가치만 오르고 원화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한 분석이다. 실제로는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같은 아시아권의 원화 가치가 동반 상승한다는 점에서 이런 효과의 상당 부분이 상쇄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위안화 절상만큼 우리나라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진다 해도, 전체 수출의 4분의1을 차지하는 대중국 수출에는 마이너스 요인이기 때문에 별로 얻는 것은 없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견해다.
더구나 위안화 절상 폭과 속도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면 그 효과는 더더욱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한꺼번에 2, 3% 절상된다면 모를까 점진적인 절상이 이뤄진다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야 된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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