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에서 자라는 야생화도 우리의 것이잖아요. 쉽게 잊혀지는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정밀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옛 광릉 수목원) 특별 전시관에는 국내에서 자생하는 야생화 57점이 전시돼 있다. 금강초롱, 기생꽃, 섬자리공 등…. 겉 보기에는 영락없는 희귀 야생화인데 정작 가까이서 냄새를 맡아보면 특유의 은은한 향기가 나질 않는다. 생화가 아닌 종이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회를 기획한 한국수공예협회 곽화숙 회장은 “크리스털 용액을 입힌 ‘크리스털지(紙)’로 만든 거에요. 종이 야생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향수를 뿌려 두었는데 생화만큼 은은한 향기를 풍기진 못하죠”라며 웃었다.
종이로 만든 것이라고 해도 꽃 잎이나 줄기, 꽃 술과 꽃 가루에 이르기까지 실제 야생화와 똑같이 표현해 낸 세밀한 묘사가 돋보였다. 작은 키의 돌단풍은 0.3mm 길이의 꽃술까지 표현했다. 꽃 한 송이를 만드는데 20분 이상 걸린다는 자운영은 속 꽃잎과 겉 꽃잎이 겹겹이 쌓인 모습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속 씨를 품은 금낭화는 불룩한 배불뚝이 같은 모습이 생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금강 초롱에는 꽃 속에 LED등까지 달아 초롱의 특징을 제대로 살렸다.
곽 회장은 “제작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한 형태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게 종이 야생화 수공예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낼 수 있는 ‘종이 야생화’의 비밀은 바로 주 재료인 종이에 있다. 일반 문구점에서 구입할 수 있는 ‘주름 종이’에 크리스털 코팅액과 희석액을 적절히 배합해 야생화의 특징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크리스털 지’를 만드는 게 포인트다. 코팅액 농도를 높이고 희석액 비율을 낮추면 종이는 더 빳빳하고 강해지지만 투명도는 떨어진다. 코팅액 농도를 너무 낮추면 은은한 빛깔이 제격이지만 종이가 흐물 거려 작업을 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종이 야생화라는 아이디어는 등산을 좋아하는 곽 회장의 평소 취미에서 비롯됐다. 이 산 저 산 오르면서 작고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나름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지닌 야생화들을 자주 목격하게 됐던 것.
“지난번 등산 때 분명히 눈에 띄었던 야생화가 몇 달 뒤 다시 그 자리에 가 보면 사라지고 없는 경우도 많더라구요. 보호 받아야 할 우리의 것들이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멸종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그 이후 곽 회장은 야생화 사진을 찍고 관련 서적도 들춰 보면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전문 서적을 통해 개화시기나 군락지의 특성 등 전문 지식도 습득했다.
무엇보다 종이 야생화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 관상용이나 장식용뿐만 아니라 교육 자료로도 활용되는데 초보자도 20분 정도면 훌륭한 야생화 한 송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물론, 제작 시간이 3일에서 1주일씩 걸리는 대작도 있다.
한편 이번 전시회는 내달 10일까지 계속된다. 국립수목원에 입장하는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둘러볼 수 있다.
강주형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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