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보상금 시장'을 놓고 은행, 증권, 보험사 등의 각축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올 한해 전국에서 쏟아져나올 토지보상금 규모는 최대 40조원. 금융회사 입장에선 단순 계산으로 10억원대 이상의 현금 자산을 쥐게 될 VIP급 고객만 4만명이 탄생하는 셈이다. 그만큼 사활을 건 경쟁을 벌일 수 밖에 없다.
인맥을 잡아라
토지 보상금 유치의 관건은 지역사회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맥을 찾아 이들을 고객으로 확보한 것. 토지수용이 이뤄지는 곳은 대부분 농촌 지역인 만큼 인맥을 잡는 것이 영업력과 직결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이들의 한마디에 수백억원의 뭉칫 돈의 향배가 사실상 결정되는 것이 현실. 경기 파주 운정지역에서 영업중인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역에 살고 있는 토지보상금 수령자 대부분이 금융사보다는 이장이나 동장, 동창회장 등 지역 유지들의 입을 통해 정보를 얻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토지보상금 유치 경쟁은 ▦농협이나 신협 등 지역 내 뿌리가 강한 금융사들과 ▦은행 증권 보험사 등 대형금융사 간의 싸움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농협의 경우 조합원 대부분이 지역유지들로 구성되어 있어, 토지보상금 시장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오고 있다. 때문에 상대적 열세에 있는 은행들과 증권, 보험사 등은 현재 지역사회와 끈을 연결하기 위해 동창회나 친목회에 후원금을 지원하고, 혹은 아예 직원들이 산악회 조기축구회 등 지역 동호회에 직접 가입하는 식으로 인맥을 쌓고 있다.
한 보험사 한 관계자는 "토지보상금 지급고시가 나면 유지들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 만큼이나 어렵다"며 "어쩔 수 없이 마을회관이나 지역행사에 각종 '스폰서'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치열한 첩보전
현지 거주 지주들의 경우 인맥이 가장 중요하다면, 외지에 사는 땅 주인(부재 지주)은 고객 정보 확보가 핵심이다. 대도시 거주 부재 지주들은 지역정서보다는 금융상품 자체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은행이나 증권 보험사들이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고객군이다.
정보전의 핵심은 스피드와 정확성이다. 누가 먼저 땅 주인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고 접근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한다. 금융사들이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부재지주의 이름과 땅의 지번 정도.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거래고객인지부터 확인하고 아닐 경우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접근하게 된다. 부재지주가 거래한 부동산중개소를 찾아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PB(프라이빗뱅크)담당자는 "부재지주의 경우 은행과 증권, 보험 상품을 여러 개 가입하는 경우가 많아 금융회사 직원들끼리 정보를 주고 받는 경우가 있다"며 "그러다보니 토지보상금 지급이 임박하면 고객 정보 확보보다 정보 유출에 신경을 더 쓰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부동산으로의 U턴을 막아라
금융회사들이 토지보상금을 어렵게 유치를 해도 이를 장기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토지보상금 수령자 대부분이 금융기관에 돈을 맡겼다 하더라도 이는 잠시일 뿐, 다시 부동산 투자를 위해 빼내갈 가능성이 아주 크기 때문이다. 파주 운정지구 인근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이모(54) 대표는 "땅으로 돈을 번 사람들은 결국 땅에 다시 투자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토지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을 보면 금융기관에 돈을 놓다가도 6개월 정도가 지나면 다시 땅을 사거나 상가를 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근엔 일부 건설업체들이 현지 지주를 아예 직원으로 채용, 아파트나 상가분양 영업에 활용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금융회사들로선 1년이 넘게 공을 들여 어렵게 유치한 VIP고객을 불과 몇 개월 만에 눈 뜨고 빼앗길 상황에 놓인 것이다.
금융회사들은 부동산으로의 이탈고객을 막기 위해 고금리 상품과 맞춤형 상품을 제시하는 등 방어전략을 짜느라 분주하다. 은행들은 토지보상자금을 겨냥한 우대금리 특판예금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고, 증권사도 고수익 사모펀드를 제시하는 등 고객 유지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부자들일 수록 단 0.1%포인트라도 금리를 더 주는 것에 아주 민감하다"면서 "앞으로는 부동산투자 보다 금융투자가 훨씬 더 안정적이고 수익률이 높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손재언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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