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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Enjoy 월드컵] 마라도나 '이단 축구' 세계는 재평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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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Enjoy 월드컵] 마라도나 '이단 축구' 세계는 재평가 하라

입력
2010.06.18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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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와 우리나라의 축구 경기를 보면서, 내내 열두 명과 시합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르헨티나 감독 디에고 마라도나 때문이었다. 골라인 아웃된 자블라니를 유연한 발동작으로 걷어 올린 제스처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뭐랄까, 조금 추상적인 느낌이지만, 그는 진정 자신의 선수들을 믿고 있는 감독, 가르치려 들지 않고 우정을 쌓고 있는 감독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기가 끝난 후, 모든 선수 한 명 한 명과 포옹하는 그의 동작은 충분히 과잉되어 있었지만, 그러나 또 한편 진정성이 절절 묻어났다. 선생과 제자의 의례적인 동작은 결코 아니었다는 뜻이다.

사실, 월드컵 남미 예선전이 한창일 무렵, 마라도나는 그가 일평생 동안 먹을 욕을, 그 제곱을, 한 순간에 다 듣고 만 사내였다. 감독으로서 특출난 전술도 없었고, 지략도 보이지 않았다. 부진한 선수를 고집스럽게 계속 기용했으며, 언론을 향해선 계속 허세에 가까운 큰소리를 뻥뻥, 내질러 전 세계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그랬으니 아르헨티나에 실제로 존재하는 '마라도나교'(아르헨티나엔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한다. 마라도나 모형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기도를 하고 찬양을 부른다고 한다) 사람들도 서서히 등을 돌린 것은 당연한 일. 결과론적인 말이지만, 사실 그 기간 동안 마라도나 감독은 자신의 축구 스타일과 흡사한 방식으로 팀을 이끌어오고 있었다.

현역 시절, 마라도나의 플레이를 짧게 요약한다면 아마도 '변칙과 무질서'로 갈음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신의 손' 논란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패스해야 할 때 패스하지 않았고, 사각 지대에서도 머뭇거리지 않고 슛을 남발한, 이단의 축구 선수였다. 교과서대로 절대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그의 재능이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서 그의 플레이는 언제나 창조적이었고, 사람들의 예상에서 한 뼘쯤 벗어나 있었다.

이번에 우리와 시합을 벌인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선수들이 바로 그런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세계의 많은 언론들과 축구팬들은 그 동안 쏟아 부었던 마라도나에 대한 평가를 교정해야 할 것이다. 그는 전략도, 지략도 없는 감독이 아닌, 무언가를 끈질기게 기다린 감독이었다고, 누군가를 가르치지 않고 이해하려고 한 윤리적인 감독이었다고. 너무 상대편 칭찬만 늘어놓는 것 같아 첨부하지만, 우리 국가대표 선수들 역시 잘 뛰었다. 북한이나 스위스처럼 극단적인 수비 전형으로 상대와 맞서지 않았다는 점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박수 쳐 주고 싶다.

그런 전형이란 정말 승패만 따지는, 그것만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축구가 아니던가. 이번 월드컵의 재미가 반감된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긋지긋한 4-4-2전형(1900년대 초반, 대부분의 축구 전형은 2-3-5였다고 한다. 공격수가 무려 5명!), 교과서 같은 판에 박힌 전형 말이다. 지금, 마라도나가 깨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교과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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