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임하 지음/책과함께 발행ㆍ408쪽ㆍ1만8,000원
김숙자 김영희 박광자 나금영 정끝남 이경순 곽희숙…. 이임하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교수가 쓴 에 나오는 70~80대 여성 35명의 이름은 모두 가명이다. 이들은 모두 6ㆍ25로 남편을 잃은 전쟁미망인들이다. 이 교수는 2006년부터 4년 간 전국을 다니며 전쟁미망인과 그 자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노랗게 절어버린 효부 상장을 내보이며 고생스러웠던 과거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여성도 있었지만, "다 잊어버렸다"며 이름 밝히기조차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 쉽게 말문을 열지 않았던 이들은 대부분 전쟁 중 학살당한 민간인 남자들의 아내였다. 그나마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았던 군경 미망인들과 달리 전후 처리에서 배제된 채 침묵 속에서 살아온 '피학살자 미망인들'은 그러나 한 번 입을 떼자 숨가쁘게 한을 토해냈다.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한 번도 말할 수 없었던 사연들이었다.
남편의 지위, 지역, 연령 등에 따라 전쟁미망인들의 전쟁 경험은 각기 다르지만, 어느 하나 가슴을 울리지 않는 사연이 없다. 결혼 3개월째였던 이호영씨는 남편이 소집돼 가는데도 "동네 사람들 보는 데 저거해서 그냥 문구멍으로 내다봤다"며 가슴을 쳤다. 만삭의 몸으로 피난길을 떠난 구영선씨는 자신을 겨눈 총 앞에서도 "'아, (총알이) 튀어나오는 건가' 그래 생각했"을 만큼 제 정신이 아니었다. 양희선씨의 남편은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강제 징집돼 이듬해 전사통지서로 돌아왔다.
전쟁의 경험보다 더 혹독한 것은 그 후의 시간이었다. 남편의 죽음 뒤 미망인들에게는 시부모와 어린 아이들을 보호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고, 그들은 생계 활동과 가사 노동을 병행해야 했다. 농촌의 전쟁미망인들은 남성의 일로 간주되던 논농사까지 맡았고, 행상과 좌판, 공장노동 등을 통해 사회로 나서며 성별에 의한 영역 구분을 깨뜨려나갔다. 잠 안오는 약을 하루 세 알씩 먹어가며 삯바느질을 하다 서른아홉 살에 폐경이 왔다는 김숙자씨는 "바느질이 들어와도 무섭고 안들어와도 걱정이었다"는 말로 당시의 고통을 털어놓았다.
상이군인과 결혼한 여성들의 경우에는 남편의 정신적 타격까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전쟁의 트라우마는 대개 의처증과 가정폭력으로 귀결됐다. 그 때문일까, 책에 나오는 상이군인 미망인들은 현재 대개 우울증과 암 등으로 피폐해진 상태다.
전쟁이라는 폭력은 그렇게 여성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렸지만, 국가는 전쟁미망인들을 보듬지 않았다. 6ㆍ25로 인한 미망인 수는 최소 30만명으로 추정되는데, 1963년 기록된 숫자는 2만7,000여명에 불과하다. 원호법이 소수의 군경 미망인만을 관리 대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쟁미망인에 대한 위계화는 여성에 대한 전쟁 피해를 최소화시키면서 국가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려는 의도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전쟁으로 중심을 잃어버린 국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전쟁미망인의 목소리를 침묵으로 가두고, 모든 피해와 고통과 상처를 개인의 운명과 팔자 탓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전쟁미망인의 삶으로 6ㆍ25와 전후 한국 사회를 짚어낸 이 책은 국가와 남성 위주로 행해진 전쟁에 대한 조명 작업을 일상과 여성의 차원으로 확대시킨다. 또 여성들의 사연에 감정적으로 접근해 눈물을 쏟게 만들기보다는 사투리는 물론, 구술 사이사이의 기침소리까지 그대로 글로 옮기고, 차분하게 다시 이를 분석해나간다. 이를 통해 저자는 "전쟁 경험, 국가 폭력, 트라우마, 젠더, 가족 등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범주의 문제들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전쟁미망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에 한층 힘을 싣는다.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의 미망인은 성차별적 용어다. 그럼에도 이 말을 그대로 쓴 것에 대해 저자는 "전후 여성들의 지위와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드러내는 용어라 생각해 역사적 맥락에서 사용했다"고 밝혔다.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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