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 했다. 국민이 원하는 변화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 듣겠다고 했고, 세종시 수정안을 국회가 처리하면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언급으로 정운찬 총리 취임 이후 약 9개월 동안 우리 사회를 두 쪽으로 갈라 놓았던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 표결을 거쳐 폐기될 운명에 놓였다. 4대 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수계 인접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의견을 재수렴하겠다며 더 많은 토론과 의견 수렴을 약속했다. 꼭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
집권 2년 반이 된 시점에서조차 대화와 소통을 강조해야 하는 대통령 모습을 보는 것은 딱하고 민망한 일이다. 왜 더 일찍 귀와 마음을 열지 못했을까, 책망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점수경쟁 교육 거부한 민심
모르긴 해도 대통령의 심정은 더할 것이다.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을 것이다.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 방안을 모색하는 데 있어 '안티 MB'쯤으로 여겨도 될 만한 민심이라는 큰 변수와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당장 인재를 등용하고 정책 우선 순위를 재조정함에 있어 보수 정권에 실망하고 염증을 느낀 중도ㆍ진보 성향 국민들을 다독이고 그들이 바라는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 멀게는 2012년 보수의 재집권 가능성을 높이는 문제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대통령은 이미 국정의 밑그림을 그려 놓은 듯하다.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안보 대통령''경제 대통령'으로 확실히 남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뜻대로 술술 풀려갈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로 상황과 여건은 녹록지 않다. 안보는 그렇다 쳐도 경제는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 경제를 한 순간에 메다꽂을 수 있는 불안 요소들은 국내외에 여전히 산재한다. 해외 금융 위기는 잠잠해질 기미가 없고 청년 실업, 부동산 및 가계 대출 등은 언제든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지나친 위기 극복의 강조로 시장 기능의 작동은 막히고 관치(官治)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적어도 지표상으로는 경제가 나아졌고, 또 좋아진다고는 하나 물가는 뛰고 중산층과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악화 일로다.
의아한 것은 교육 문제를 직접 챙기겠다던 이 대통령이 교육감 선거결과는 직접 거론하지 않은 점이다. 단지 "규제, 공기업, 노사, 교육 등 각 분야의 선진화 개혁이 본 궤도에 진행했으며, 선진화를 위한 국정은 일관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이런 언급은 기존 경쟁 중심의 교육 정책을 평가하고, 계속 추진할 의사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서울ㆍ경기도 등 6개 지역에서 진보 성향 교육감을 택한 민심에 반하는 것이다. 변화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화와 소통을 하겠다는 연설의 전체 취지와도 어긋난다.
나는 이 대통령이 재임 중이든 퇴임 후든 그의 뜻대로 '교육 대통령'이라는 명예와 평가를 얻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서 보았듯이 국민들 사이에 점수 위주 경쟁 교육에 대한 거부감이 엄존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태도로는 그런 평가를 얻기 힘들다.
진보 교육감들과 대화하길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핀란드식 교육 모델은 거저 나온 게 아니다. 핀란드는 1960년대 말 이후 40여년 동안 학제와 교육과정 등 교육 시스템의 대변혁을 시도했다. 정권이 교체돼도 교육 개혁은 특정 정파의 이익이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일관성 있게 추진됐다. 그것은 인내심을 갖고 교육 개혁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룬 뒤 개혁을 강력하게 뒷받침한 정치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대통령이 그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보수ㆍ진보의 이념적 색깔을 지우고 백년대계를 위해 무엇이 우리 아이들과 국가를 위한 길인지 합의점을 찾는 일에 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 조직을 만들고 기구를 띄워도 좋다. 그러나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가슴을 열고 6명의 진보 성향 교육감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다. 교육 개혁은 그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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