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압승한 6ㆍ2 지방선거 결과에는 한국의 민주화 역사에 슬기롭게 기능해 오던 여당 경계심리가 거듭 큰 영향을 미쳤다. 1988년 총선 직전에도 내가 아는 한국인들은“민정당은 너무 강하면 안 된다”고 말하더니 결국 야당이 압승해 ‘여소야대’가 되었다.
여소야대 현상은 야당에만 좋은 것은 아니다. 올 가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내심‘의회가 공화당 쪽으로 넘어 갔으면’하고 바란다는 말이 있다.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 민주당 대통령이 추진하는 법안 통과가 어려워지지만, 대신 국정 책임이 분산돼 대통령 재선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이처럼 여소야대 논의는 대개 누가, 또는 어느 쪽이 힘을 갖는지가 중심이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는 오히려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정치가‘누구’ 수준에 멈추게 되면, 구체적 정책에는 특수한 이익집단을 제외하고는 큰 관심을 갖지 않게 된다. 이렇게 되면 민주주의 역사가 오랜 미국에서도 정치가 위험한 포퓰리즘으로 흐를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정치에는 서울 집중이라는 독특한 한국적 문제가 있다. 주요 선진국 가운데 수도와 수도권에 한국만큼 모든 것이 집중된 나라가 찾기 어렵다. 한국과 인구가 비슷한 영국과 프랑스도 수도권이 크지만 전체 인구의 20~25% 정도이다. 주민수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일본의 도쿄 수도권도 전체 인구의 25%밖에 안 된다. 브릭스(BRICs) 국가들은 모두 인구가 분산되어 있고, 경제와 정치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것이 서울에 집중되다 보니까, 나도 서울과 수도권을 벗어날 기회가 많지 않다. 또 가끔 지방 도시를 찾아가보면, 서울과 너무 차이가 크다. 지난 1년 사이에 부산과 광주에 출장을 간 적이 있다. 다 알다시피 부산은 한국의 제2도시고 광주는 제5 도시이다.
그러나 부산은 바다가 아름답고 일본인 중심으로 관광산업이 발달되어 있지만, 도시 전체가 고령화되고 활기가 없는 분위기이다. 구도심은 낙후된 인상이다. 광주는 2년마다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외에 볼거리가 별로 없다. 편리성도 뒤떨어진다. 대구와 대전도 비슷하고, 더 작은 지방 도시는 더욱 그렇다.
한국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벤치마킹한 일본과 비교하면 부산은 오사카, 광주는 후쿠오카 정도의 위치에 있는 도시들이다. 그런데 오사카는 인구가 많은 관서지방의 핵심 도시로 도쿄만큼 편리하고 활기찬 산업 도시다. 후쿠오카는 전라도와 비슷하게 농사가 잘 되는 큐슈 지방의 핵심 도시이며 일본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평가되고 있다.
지방선거로 나타난 여소야대가 진정한 의미를 지니려면, 중앙정치에서 어느 쪽이 힘을 갖는가 하는 논의보다는 서울과 지방의 정치ㆍ경제적 중요도와 역할 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지방이 정치ㆍ경제적으로 서울과 중앙정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실에서는 중앙과 지방의 균형발전 등 지방자치의 고유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 완화와 지방자치 활성화는 같은 문제이다. 그 핵심은 바로 분산이다. 이른바 개발독재 시절 형성된 한국의 정치ㆍ경제 구조는 오로지 집중 모드에 매달린 결과 분산은 외면되었다. 모든 권력은 청와대와 서울로, 모든 경제적 힘도 재벌과 서울로 집중돼 발전해 온 한국은 이제 분산 모드로 바꿔야만 한다. 그래야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고, 여소야대가 정치세력이 아닌 유권자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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