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상반기 성적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서프라이즈'수준이었다. 과연 앞으로도 순항은 이어질 수 있을지, 숨은 암초는 없는 것인지, 국내 5대 주요 경제연구원장들로부터 하반기 한국경제의 기상도를 들어봤다.
■ 하반기 경기흐름은/ '상고하저' 예측 내용면선 별 문제 없을 것
상고하저(上高下低). 당초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이 예측했던 올해 경기 흐름이다. 상반기에 빠른 회복세를 보이다가 하반기에는 다소 둔화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경제연구기관장들의 평가는 좀 달랐다. 작년 성장률이 상반기 마이너스에서 하반기 플러스로 돌아선 기저효과를 감안할 때, 성장률 수치상으로는 '상고하저'일지 몰라도 내용면에서는 하반기에도 비슷한 회복세가 지속될 거라는 평가다. 김영용 원장은 "기저효과를 배제하고 보면 상반기 빠른 회복세가 하반기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4개월째 이어진 경기선행지수 하락도 올해 안에는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진단이다. 현오석 원장은 "과거 경험상 선행지수가 경기에 반영되기까지 12~13개월이 소요됐다"며 "작년 4분기가 선행지수 정점이었다고 보면, 내년 1분기는 돼야 경기 둔화가 올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하반기 경기둔화 우려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니다. 김주현 원장은 "3분기와 4분기에는 정부 재정의 성장기여도가 축소될 수밖에 없고 기업이나 가계의 경제심리도 점점 위축되고 있어 일부 경기 둔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정기영 소장은 ▦중국 등 신흥국의 경기상승세 둔화 ▦대내외 금융불안 ▦정부의 경기부양 역할 약화 등을 이유로 하반기 경기가 상반기와는 단층적인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유럽 재정위기는/ "유로존 붕괴는 없지만 상당기간 불안 지속"
하반기에도 우리 경제에 여전히 가장 큰 변수일 수밖에 없다. 과연 유로존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것인지, 이 불안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어느 정도인지….
경제연구기관장들의 판단은 대체로 비슷했다. 우선 유로존 붕괴 같은 파국을 예상한 연구기관장은 한 명도 없었다. 어렵게 만든 유로존을 붕괴시킬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유럽내에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특히 7,500억유로 구제기금 조성으로 최악의 위기 국면은 지난 것으로도 평가된다. 정기영 소장은 "단기적으로 볼 때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유럽금융안정 메커니즘이 일부 작동되면서 위기 국면은 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고, 김영용 원장은 "구제기금 조성으로 남유럽 위기는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평했다.
그렇지만 불안 요인이 완전히 해소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는 게 공통된 견해. 김주현 원장은 "해결 방법은 지출을 줄이는 것 외엔 없는데 이미 복지국가가 된 남유럽 국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구제기금의 효과적인 집행에 대한 시장의 신뢰와 확신이 부족한 것도 불안이 지속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현오석 원장은 "결과적으로 유럽연합(EU)해체는 없겠지만 불안 요인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세계 및 한국 경제 회복에 적잖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하반기 최대 뇌관은/ 부실 中企·물가 상승·청년실업 등 위협 요인
하반기에도 우리 경제가 순항을 할 거라는 진단이지만, 그래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화를 부를 수 있는 뇌관들이 적지 않다.
경제연구기관장들이 한결같이 1순위로 꼽은 것이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 침체다. 3월말 현재 가계 빚(가계신용)은 739조1,000억원. 올 들어 증가세가 둔화(5조4,000억원 증가)했다지만, 부동산 경기 불황과 맞물리는 경우 폭발력이 무시무시하다. 더구나 하반기엔 한두 차례 이상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 김주현 원장은 "부동산 가격이 추락하고 금리가 오르면 가계의 대출상환 능력이 떨어지면서 한계선상의 가계들이 줄줄이 파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부실 중소기업도 우리 경제에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 불황기에 강하게 밀고 갔어야 할 구조조정을 게을리한 탓에 결국 경기 회복기에 부메랑이 돼서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김영용 원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저금리와 각종 지원책으로 부실 중소기업의 목숨을 연명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 경기 회복에 상당한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물가 상승 압력도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현오석 원장은 "유동성 과잉 공급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하반기엔 본격적으로 나타날 것"이라며 "유가도 높아지고, 수요 압력도 커지고, 임금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우려했다. 이밖에"청년실업은 경제의 불안요인을 넘어 사회 불안요인으로 확산된다"(김태준 원장)며 청년실업 문제를 뇌관으로 꼽기도 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 출구전략은 언제/ 금리인상 공감대… 시기·폭엔 다소 시각차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리인상은 시기상조"라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그런 주장이 대부분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국내외 기관들이 한 목소리로 금리 인상 필요성을 주장한다. 거의 유일하게 정부만 시기상조라는 공식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
시기와 폭에 대한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긴 하지만, 경제연구기관장들도 대체로 금리 인상을 독촉하는 모습이다. 너무 늦어지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뒤늦게 급격히 금리를 올렸다가는 경기가 급강하하는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란 지적이다. 만약에 하반기에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는 경우 자칫 금리 인상 타이밍을 완전히 놓쳐 버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김주현 원장은 "0.25%포인트씩 여러 차례에 걸쳐서 금리를 인상해야 된다"며 "현재의 2%인 기준금리는 적정 금리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며 4%까지는 충분히 올릴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단, 금리 인상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시기 선택에서 신중할 것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작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을 주장해 온 KDI의 현오석 원장은 "금리 인상 자체가 주는 충격은 거의 없지만 정책 변화가 시장에 주는 충격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고, 정기영 소장은 "세계적인 추세 및 경제 흐름을 보면서 금리 인상 타이밍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 정부가 할일은/ 미래위험 사전에 파악… 선제적 정책 마련을
현 경제팀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양호했다. 예상보다 빨리, 무난하게 위기상황을 극복해 냈다는 것. 그러나 지금까지는 발등의 불을 끄는데 정책초점이 맞춰졌다면, 앞으로는 미래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한발 앞서 조치를 취할 능력을 배양하는 쪽으로 중심 이동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준 원장은 "위기가 오기 전 좀더 빨리 위험 요소를 모니터링 해서 선제적으로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김주현 원장은 외환시장 변동성을 줄여 사전에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특히 "우리나라 환율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위기가 와도 출렁거리는 상황"이라며 "몇 번째 반복되는 상황인데 이제는 이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현오석 원장은 "녹색산업 및 서비스산업 육성, 인재개발 등 위기 이후 잠재 성장 능력을 높이는 정책은 정치 상황에 흔들리지 말고 단호히 추진하라"고 강조했다. 정기영 소장은 "선거 때문에 주요 경제 현안이 추동력을 잃고 표류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 재계를 대표하는 김영용 원장은 특별히 "정치논리 때문에 유예됐던 이명박 정부의 초기 정책기조, 즉 감세와 규제완화, 작은 정부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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