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가 6∙15공동선언 10주년이었다. 그러나 오늘 한반도는 '대북 심리전'과 '서울 불바다'로 남북이 팽팽히 맞서는 긴장상태에 놓여 있다. 화해와 협력의 담대한 진전을 꿈꿨던 한반도가 강(强) 대 강(强)의 대결구도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말의 공방이 군사적 행동으로 옮겨갈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태다.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경색국면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대북 심리전과 '서울 불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은 듯하다. 6∙15선언이 던진 희망의 울림은 시계 제로의 남북관계 속에 포박되고 있다. '냉전시대로의 회귀'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역린(逆鱗)의 남북관계다. 얼어붙고 있는 남북관계를 더 이상 악화시켜서는 안된다. 남측의 대북 심리전은 유보돼야 하고, 북측의 서울 불바다 발언은 철회돼야 한다.
최근 북한의 원색적인 긴장 고조 발언이 이어졌다. 5월 24일 전선중부지구 사령관 명의의 공개 경고장을 통해 '심리전 재개시 확성기를 직접 조준사격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5월 25일에는 군사 전통문을 통해 북한이 내세우는 '새로운 해상경계선'의 해상 수역 고수를 위한 실제적 군사조치를 실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급기야 6월 12일 인민군 총참모부는 '심리전 수단을 청산하기 위한 실제적 군사조치 실행'과 '서울 불바다'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중대 포고문을 발표했다. 원색적이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하다.
'서울 불바다'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해소를 염원하는 한국인들에게 오랜 동안 아물지 않는 생채기를 남길 수 있는 것으로 비판 받아 마땅하다. 불바다는 남북 당국간 갈등에 민간을 볼모로 삼을 수 있다는 것으로 남측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전혀 없다. '서울 불바다' 협박을 접하는 국제사회에도 북한은 호전적 국가로 인식되기 충분하다. 아무리 우리 정부가 싫다고 해도 한계선을 넘어선 발언이다. 16년 전 같은 불바다 발언으로 인한 남측 국민들의 안보 불안이 고조되자 남측 정부는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했다. 북측의 무리수는 이런 부정적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북측은 알아야 한다.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은 그래서 하루빨리 철회돼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 군 당국의 대북 심리전 재개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선전 전광판 설치, 전단지 살포 등은 과거 회귀적이다. 냉전시대 방식으로 돌아가 대북 심리전을 전개하겠다는 것이 찜찜하다. 북한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분야를 선택해 압박효과를 거두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너무 과거지향적이다. 냉전시대의 도식을 좇아 남북관계를 끌고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한 민족
대북 심리전을 유보해야 할 이유는 많다. 우선 심리전은 북한 사회의 퇴행적 변화를 부를 수 있다. 북한은 맞대응 차원에서 대남 심리전을 재개할 것이다. 내부 결속을 위한 다양한 기제로 활용될 수 있다. 북한 내부의 대남정책에 강경 입장과 보수적 정책 선택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대북 심리전이 남북관계의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군사적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유보할 필요가 있다. 심리전이 북측의 도발과 군사적 충돌의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는 단절시키기는 쉬우나 복구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많은 시간이 걸린다. 어제 새벽, 월드컵 축구 북한과 브라질 경기에 앞서 북한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눈물로 범벅이 된 정대세 선수를 봤다. 천안함 사건 때문에 북한을 많이 싫어하게 된 시청자들도 그 장면을 보고 어쩔 수 없는 한 민족임을 느꼈을 것이다. 박주영과 정대세가 투톱을 이뤄 나란히 뛰는 모습을 다음 월드컵에서는 꼭 보고 싶다. 정대세의 뜨거운 눈물이 한반도의 얼음장을 녹아 내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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