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못해 현충원 매점에도 있는 폐쇄회로(CC)TV를 유관순 열사 위패를 모신 제단에 달지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애국선열이 라면이나 빵보다 못하다는 건가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최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서 항일 애국지사 고(故) 이재현 선생의 장남 형진(56)씨를 만났다. 1년 중 이달만큼은 애국선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뿌듯할 법도 한데, 양복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정성스레 묘비를 닦는 이씨의 얼굴은 착잡해 보였다.
10년 넘게 자진해서 현충원 지킴이로 나서고 있지만 현충원 관리는 여전히 부실하고 이곳을 찾는 이들의 태도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그는 1997년 부친을 현충원에 모신 이후 14년간 매주 한 주도 빠짐없이 현충원 애국지사묘역을 찾고 있다. 선친인 이재현 선생은 1940년 9월 광복군을 창설해 중국 상하이와 홍콩 등에서 활약했고, 태항산전투 등에 참여한 독립투사로 63년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그가 애초 매주 현충원을 찾은 건 선친을 만나기 위해서다. 집에서 직접 싼 도시락에 평소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찬을 정성스레 싸와서 올리는 것은 물론, 정성스레 묘비를 닦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렸다. 선친뿐 아니라, 함께 독립운동을 했지만 시신조차 찾지 못한 큰아버지 이재천 선생의 위패도 함께 찾는다.
그러다가 섬뜩한 일을 겪었다. 4년 전 선친묘역에 몸이 잘린 닭의 머리가 놓여있었던 것. 안되겠다 싶어 그 이듬해부터 현충원 관리를 돕는 현충원 지킴이 활동에 참가했다. 쓰레기도 줍고 질서도 유지하는 일종의 자원봉사였다. 이뿐 아니라 현충원 관리의 허점을 콕콕 집어내는 통에 현충원은 그를 껄끄러운 상대로 여겼다.
현충원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지만 얼마 전부터 현충원을 향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올 1월 큰아버지를 모신 애국지사묘역의 무후선열제단에서 납북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의 위패가 훼손된 현장을 발견했기 때문. 독립운동을 하다 순국했지만 유해를 찾지 못했고 후손도 없는 순국선열 131분의 위패를 모신 무후선열제단엔 유관순 열사,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했던 이위종 이상설 열사, 홍범도 장군, 정인보, 엄항섭, 조소앙 선생 등 납북독립운동가의 위패가 있다.
아랫부분이 들리고 흠집이 난 조소앙 선생의 위패를 발견한 이씨는 단단한 돌로 만들어 시멘트 등으로 고정된 위패를 누군가 일부러 망가뜨린 것이 틀림 없다고 생각해 현충원에 신고하고 CCTV설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며칠 뒤 이씨는 뜻밖의 답변을 들었다. 현충원이 '특정인의 소행이 아니었으며 위패와 좌대 접착부분이 일부 떨어져 분리돼 넘어지면서 흠집이 생긴 것으로 파악됐다'고 서면 통보를 한 것이다. 이씨가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제단 건물 안에서 시멘트 등으로 고정된 위패가 스스로 넘어졌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다시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이에 대해 현충원 관계자는 "사람이 많이 찾는 곳도 아닌 데다, 수사기관에 신고하거나 조사를 의뢰할 일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씨는 "국가를 위해 싸우다 숨진 선열들이 100여명이나 쉬고 계신 곳인데, 인적이 드물다고 그 흔한 CCTV 한대 달아주지 못한다는 행정이 무심하다"고 속상해했다.
이씨는 "14년간 현충원을 찾으며 슬리퍼나 반바지 차림, 잔디에 눕기, 삼겹살 구워먹기, 노상방뇨는 예사고 입에 담기 거북한 차 안 애정행각까지 볼 것 못 볼 것 다 봤는데 이제는 묘역 훼손까지 걱정하는 처지"라고 씁쓸해 했다.
"사람들이 애국지사가 아닌 누구라 하더라도 돌아가신 분에 대한 예의를 지키고, 국가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묘역을 보호해줬으면 좋겠어요." 이날 현충원엔 어린이와 군인 등 수많은 참배객들이 찾아왔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김주성기자 poe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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