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인터뷰/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한 김혜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인터뷰/ 제34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한 김혜나

입력
2010.06.14 12:34
0 0

"저는 제도권 안에서 소위 문제아였어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온몸을 던져 격렬히 방황하다 보니 '나는 도대체 어디 있을까' 하는, 존재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죠. 관성에 젖었던 삶 가운데로 어릴 때 읽었던 소설들이 미미한 빛으로 다가왔어요. 이젠 내 존재가 소설인 것 같아요."

소설가 한수산 박영한 이문열 조성기 강석경, 시인 김광규 최승호씨 등을 배출한 민음사 주관 문학상인 '오늘의 작가상'. 이 상의 제34회 수상작으로 뽑힌 장편소설 의 작가 김혜나(28)씨는 막 출간된 빨간 표지의 책을 매만지면서 "정말 기쁘고 신기하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어머니께서 딸이 신문에 나왔다고 친척들에게 말하니까 '이번엔 얼마나 큰 사고를 쳤길래' 하고 반응할 정도였어요. 는 제가 그런 진창에서 통과해온 시간을 반영하고 있죠."

수도권의 2년제 야간대학 학생인 나와, 노래바나 호스트바에서 '선수'로 뛰는 제리. 출발부터 는 세상에 뒤처진 '신 프롤레타리아' 계급 청춘들의 무의미한 일상과 절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희망을 갖는 것을 섹스보다 '비경제적'으로 여기는 88만원 세대의 고통을, 충격적인 성애 묘사 등을 통해 현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소설은 실로 불편하다. 김씨는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들도 그것을 진정으로 바라서가 아니라 선택할 것이 없기 때문에 공무원시험을 보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더라"면서 "희망을 가질 기회조차 없는 20대에게 이 소설을 통해 내 경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는 대담하게 까놓고 말한다는 점에서 언뜻 정이현씨의 소설 와 닮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김씨는 "의 인물은 사회적 지위나 기본적인 조건은 갖춘 사람이고, 내 소설은 그조차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어디까지가 제 이야기냐고요? 그런 의문이 든다면 성공한 거네요." 에둘러 말했지만 그는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한 뒤 "가출, 정학이 우스웠던"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다. 스무 살 무렵엔 종로, 홍대 거리를 방황하며 매일같이 술에 찌들어 살았다고 했다.

"그날도 밤새 술 마시고 홍대입구역 계단에 앉아 첫 차를 기다리는데, 아침이 밝아오면서 푸르스름한 허무와 고독이 밀려들더라고요.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청주대 국문과에 들어갔다. 중학교 땐 교과서에 실린 '상록수'의 영신이 "잠자는 자 잠을 깨고 눈 먼 자 눈을 떠라"고 말한 문장에 눈이 번쩍 뜨여 근ㆍ현대 한국소설을 섭렵하다시피 했었다. 물론 아무도 '책 읽는 문제아'를 주시하지 않았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윤대녕, 은희경, 배수아씨 등의 동시대 소설과 세계문학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학창시절에는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의 뜻을 묻는 객관식 문제를, 문제조차 이해 못했다는 그는 대학에서는 한번도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다.

"글쓰기를 배우려면 백화점 문화강좌를 찾아가야 하는 줄 알았다"고 웃으며 말한 김씨는 "운좋게 윤후명 선생님의 소설교실을 찾아 5년 동안 기초를 닦았다"고 했다. 그 동안 일간지 신춘문예와 문예지 공모에 응모해 네댓 번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좀체 기회는 없었고, 스스로 자신없어하는 단편소설은 접고 장편 창작에 몰두했다. 는 4년 전에 쓴 거친 초고를 3년 동안 퇴고해 완성한 그의 첫 장편이다.

지금도 김씨는 홍대 거리를 누빈다고 했다. 그러나 욕망을 좇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그곳 요가원에서 강사로 일한다는 그는 "회사에 다니면서는 도저히 글 쓸 여력이 없었다"며 "시급이 세고 시간 활용이 자유로워 시작했는데, 요가는 글 쓰면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비워내고 치유하는 데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프랑스 여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죽음으로 끌고 가는 강력한 문법, 힘을 다 빼버린 글 두 종류를 다 써냈어요. 저도 파괴적인 문법의 작품과 평이하면서 따뜻한 글을 다 쓰고 싶어요. 모두 소외된 사람들을 정면에서 이야기하려는 거죠."

김혜경기자 thank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