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화 속으로'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맞서 싸운 학도병들의 이야기다. 국군이 낙동강을 사수하기 위해 떠난 뒤 학도병이 전선의 주요 축인 포항을 책임지게 되면서 영화는 시동을 건다. 총 한방 쏴보고 적과 대치하게 된 철없던 학도병들은 전쟁의 공포에 전율하면서도 결국 생각지도 않게 임무를 완수하게 된다.
영화는 반전의 메시지를 보내려는 듯 하다. 학도병의 총에 맞은 북한군이 단말마처럼 "오마니"를 부르거나, 십대 중반쯤 보이는 북한 소년병에게 총부리를 겨눠야 하는 비정한 장면 등을 통해서다. 학도병 중대장인 오장범(T.O.P)은 어머니에게 보내려는 편지에서 "왜 전쟁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반전 메시지는 일종의 장신구처럼 보인다. 왜 전쟁이 시작됐고 총부리를 서로 겨누게 됐는지에 대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기 때문이다. 오장범 등 71명의 학도병들이 국군에 끌려온 것인지, 스스로 총을 든 것인지 참전의 동기가 불명확하다. 학도병들은 "이러다 나라 뺏기는 것 아냐?"라며 우국충정을 보이기도 하지만 참전 과정은 거의 입에 올리지 않는다. 구체적인 배경을 배제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서술하려는 화법은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하지도, 비장한 감동을 유발하지도 못한다.
북한군 장교 박무랑(차승원)의 캐릭터도 요령부득이다. "동무 눈엔 쟤들이 군인들처럼 보이요?"라며 인간적인 면을 보이던 그는 싸이코패스를 연상케 하는 광적인 모습으로 돌변한다. 특히나 마지막 대사는 이해불가다. "어쩌겠소. 동무는 남조선에서 태어났고, 나는 북조선에서 태어난 것을…." 김일성의 신임을 받은, 뼈 속까지도 공산주의자일 듯한 엘리트 장교의 말치고는 참 뜬금없다.
마지막 옥상 장면도 이 영화의 정체성을 불분명하게 된다. 수 많은 탄피를 쏟아내며 홍콩 누아르를 떠올리게 하는 이 비장한 장면에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전쟁의 참혹성을 담아내기엔 부적절해 보이는 스타일시한 화면도 뜨악하기만 하다.
벼 밑단만 남은 논두렁을 자동차가 달리는 장면은 딱하기까지 하다. 시간적 배경은 한국전쟁 개전 두 달이 채 안된 한여름. 이 영화의 역사적 인식을 보여주는 묘사다. 1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고도 의미와 재미를 한꺼번에 잃은 보기 드문 블록버스터다. 감독 이재한. 1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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