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두 딸의 학교를 선택하는 데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대통령이 자식을 공립학교로 보낼 것인가 아니면 명문가의 관행에 따라 사립학교로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워싱턴 정가의 이슈가 되기도 했다. 당시 언론은 공립학교로 보낸다면 대통령의 교육정책을 염두에 둔 다분히 '정치적 고려'에 해당된다고 논평했다. 결국 대통령은 두 딸을 워싱턴의 유명한 스드웰 프렌즈 사립학교에 보냈다. 이 학교는 연간 수업료가 3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워싱턴 명문가 자녀들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귀족학교'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한 근거는 '경호상의 이유'였다고 한다.
공인이 되는 순간 재검증 시작
오바마의 사례는 공화주의적 전통이 강하거나 공동체주의가 사회적 주도 가치인 경우에 자주 논쟁이 된다. 영국과 같이 계층 및 계급 사이의 문화적 구획이 분명하여 문화적 이질성이 강한 사회와는 다른 양상이다. 사회적 가치를 다루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어느 유형에 가까울까? 두 사회 중에서 고른다면 우리는 미국에 더 가깝다. 문화적 동질성이 그 어떤 사회보다도 강고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우선한다는 점에서 미국보다 공적 명분이 더욱 부각된다.
정치인은 물론이고 연예인들이 공인으로서 대중에 등장하자마자 공적 명분이라는 잣대가 공인의 사적 영역을 재검증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런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병역의무와 국적문제는 아마도 공인으로서 공적 명분을 평가하고 대중이 이를 무난히 수용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데 대표적인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인이 선호하는 사적인 취향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평가와 관련이 된다면 예외 없이 공적 명분으로 간주된다.
특히 정치인에게 그 동안의 사적인 생애 행로는 그의 모든 정치적 이념과의 일치관계에서 평가된다. 공직에 대한 청문회 과정은 바로 그러한 총괄적인 평가가 행해지는 관문이다. 청문회를 거치는 공직 후보자들의 프라이버시가 자주 침해되기도 하여 측은하기조차 하다. 재산축적 과정, 자녀 진학, 가족관계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병명까지 공적 검증의 자료로 제출된다. 청문회를 통과하여 공직을 수행하는 경우나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사안으로 인해 낙마하는 경우 모두 인격 손상의 후유증은 적지 않아 보인다.
본래 현대인은 사적 욕망으로 무장된 존재다. 이는 시민사회라는 전쟁터에서 생존해 가면서 형성된다. 근대의 산물인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분리 원칙은 그러한 이중적인 현대인의 속성을 합리화하는 장치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세련된 현대인은 내적인 은밀한 욕망을 공적 영역에서 가급적 은폐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 받게 된다. 자신을 과도하게 노출하는 경우는 시골 촌뜨기거나 순진한 도시인 둘 중의 하나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인은 본질적으로 이중인격자다. 이를 약간 순화하여 말한다면, 현대인은 외부에서의 투쟁을 내적 자아 영역으로 가져와 격렬하게 고민할 줄 아는 존재다. 이는 문명이론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의 주장이기도 하다.
교육책임자의 자녀 교육 점검
현대인에게 투명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적 자아가 복잡하게 분화되었다는 말이다. 이렇게 본다면, 사적 영역에서의 욕망을 완전히 부정하고 공적 명분과의 무조건적인 일치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 수 있다. 우리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공적인 발언 행위와 실제 자식교육의 방식이 불일치 하는 것은 우리 현대 평균적인 한국인의 초상이다. 그럼에도 이를 일치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입시경쟁 대열에 자녀를 합류 시키지 않는 부모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부모는 교육문제 고발이라는 목표의식을 가진 선각자이면서 동시에 순교자에 버금갈 정도다. 더욱이 교육정책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자녀교육 방식을 사회적 가치척도와 공적 명분에 비추어 면밀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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