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의 운명이 걸린 그리스전 전반 7분, 이정수의 선제골이 터지자 초조하게 그라운드를 응시하던 허정무 감독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후반 7분 박지성의 쐐기골이 터지자 그는 양팔을 풍차처럼 돌려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꿈의 무대', 월드컵 본선에서 첫 승리를 맛보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리스전 승리는 누구보다도 허 감독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네 번째 밟는 월드컵 무대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선수로 나선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한국은 1무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했다. 트레이너로 참가했던 90년 이탈리아 대회에서 한국 축구는 3연패를 당하며 승점을 올리지 못했다. 코치로 김호 감독을 보좌했던 94년 미국 대회에서는 2무1패로 아쉽게 조별리그 통과가 좌절됐다.
그리스전은 허 감독이 선수, 코칭 스태프를 포함해 10번째로 나선 월드컵 본선 경기다. 9차례의 실패 끝에 맛본 첫 승이니 그 기쁨은 누구도 짐작하기 어려울 만 하다.
축구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나선 국제 대회에서 겪은 아픔을 씻어버린 1승이기도 하다. 허 감독은 98년 프랑스 월드컵이 끝난 후 올림픽 대표(23세 이하)와 A대표팀 지휘봉을 동시에 잡았다. 그러나 세 차례의 국제대회에서 기대를 못 미친 끝에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지휘봉을 반납해야 했다. 98년 방콕아시안게임 8강전에서는 두 명이 퇴장한 개최국 태국에 1-2로 패배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본선에서는 첫 경기에서 스페인에 당한 0-3 패배의 충격을 딛지 못하고 이후 2연승을 올렸음에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결국 같은 해 10월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3위에 그치며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허 감독 사임 후 한국 축구는'외인 사령탑'시대로 접어 들었다. 7년 만에 대표팀 지휘봉을 되찾은 허 감독이 56년 만에 한국인 지도자로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기록했으니 '결자해지'를 제대로 한 셈이다.
그러나 허 감독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전 후 첫 승의 기쁨을 억누르며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담담히 소감을 밝혔다. 남아공에서 '유쾌한 도전'을 천명한 허 감독이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금자탑을 완성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포트엘리자베스(남아공)=김정민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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